곤경 속에 빠졌을 때
“부러진 한쪽 날개를 퍼덕거리며한 마리 새가 앉아 노래 부른다. 날개가 있음을 알기 때문에”
지금 정원에 있는 앵무새가 온종일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뉴질랜드에 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병도 심한 데다가 신경증적인 문제도 가지고 있었다. 그 친구는 언제나 기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작지만 기쁨을 일깨우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을 생각해 냈다. 앵무새를 훈련시켜 "기뻐해, 기뻐해, 도라!"라고 말하도록 한 것이다. 때때로 기분이 즐겁지 않을 때면 그 앵무새는 이렇게 재잘거린다.

"도라, 도라, 어디 있어? 기뻐해, 도라, 기뻐해!"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기쁨을 일깨우는 말씀을 해 주셨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기만 하여라. 하나님을 믿으라. 기운을 내라.'
1944년 앤과 내가 멕시코에 갔었는데 녹음 선교 여행에는 치명적인 어떤 사태가 벌어졌고 이전에 했던 기도의 기가 막힌 응답의 시작으로 대단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한번도 해 본 적이 없는 말을 우리는 하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지 우리 서로 기뻐하라고 권면해 주도록 하자."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하였다.
"조이, 내 지갑을 잃어버렸어. 기뻐하자.
자동차 타이어가 터졌어. 기뻐하자!
세계대전 때문에 멕시코에서 더 지체하게 되었어. 감사합니다. 주님!"
그 선교 여행의 성과로 많은 여러 부족들이 음반에서 되풀이 하여 흘러 나오는 복음을 듣고 구원 받았다. 당신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연막과 소음과 곤경 속에서 찬양의 날개를 타고 하나님이 계신 청명한 하늘 위로 높이 솟아 오르라!



  나는 많은 세월을 온두라스 선교사로 다른 선교사들과는 멀리 떨어진 산지에서 보냈다.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많은 영혼이 구원 받았고 죄의 길과 악한 일에서 자유케 되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대적 마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괴로움을 주는 핍박을 끊임없이 선동하였다.
그 때 나는 부차적인 원인들을 보는 법을 배우지 않았고 기쁘게도 항상 모든 것을 직접 하나님의 손에서 받는 법을 배웠다.
물론 고심한 적도 자주 있었던 것을 실토하지만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들은 더 풍성한 축복과 더 많은 열매들, 그리고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하는 데 이용될 뿐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와 대치하고 있는 악의 세력에 대항하여 전혀 손을 쓸 수 없을 때도 있었다.
나는 권력도 없었고 정의 구현을 하는 세상적인 어떤 형태나 보호 기구에 은신할 만한 아무런 연줄도 없었다. 나는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하였다. 다음 말씀은 나에게 모든 것을 의미하였다.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예로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깨달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주께서 기쁘게... 행하는 자를 선대하시거늘”(사 64:4,5)

그 후로 이 말씀은 줄곧 내게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는 하나의 원리가 되었다.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기다리는 자를 위하여 역사하신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뻐하는 자를 위해 일하신다.
내가 찬양하며 기다린 결과, 하나님께서 그토록 놀라운 일을 행하신 것을 보아왔다. 어떠한 엄청난 일이 우리에게 닥쳐왔다 해도 우리는 참으로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한 일이라곤 기도하며 기뻐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믿음으로 기쁨 속에서 찬양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아마도 당신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막과 같은 사건들을 겪어 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어쩌면 우리 입에 불평이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시편 106편에는 서로 대조적인 반응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저희 장막에서 원망하는” 사람들과 “그 말씀을 믿고 찬송을 부르는” 사람들!

우리가 불평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좋으신 아버지이신 것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입술로 불평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 입에서는 찬양이 터져 나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감사드리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이 진실되며 응답이 오는 중임을 깨닫고 마음이 뜨거워질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그 얼마나 놀라운 공급원이십니까?
영광 가운데 풍성하심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주님은 당신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의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의 모든 쓸 것을 채우리라.
그 얼마나 놀라운 후원입니까!
그리스도 예수, 그 얼마나 놀라운 통로입니까! 그 풍성하심 속에 당신의 모든 쓸 것이 공급된다는 것은 당신의 놀라운 특권인 것입니다.
그분의 다함이 없는 창고가 당신 앞에 열려져 있습니다. 꾸밈이 없는 단순한 믿음으로 나아가 그 창고를 활용해 보십시오. 그러면 세상적인 후원자를 의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홍해를 건넌 다음,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렇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그리고 미리암이 화답하였습니다.
"너희는 여호와께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라"
속박의 쓰라리 세월이 지나고 애굽인들로부터 기적적으로 해방을 받은 그들은 노래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원수들이 바다에서죽는 것을 목도하였을 때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보았기 때문에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홍해를 건너기 전에, 큰 구원을 목도하기 전에 주님 앞에서 춤추고 노래했었더라면 얼마나 놀라왔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셨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었습니다. 우리가 아프리카 이집트에 입국하여 그 나라에서 사역하기 위해 정말로 엄청난 기적같은 구원을 기대하며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우리 선교 팀은 그런 일을 본 다음까지 기다려서 찬양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찬양합니다.
이 일 후에 우리가 그 놀라운 구원을 보기까지 이년 반이 걸렸습니다.
그 기간동안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였고 아득하였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행하실 것을 믿었고 주님을 계속해서 찬양하며 노래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루어진 일처럼 여겼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승리를 노래하며 찬양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것을 우리 눈 앞에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죄의 속박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소식을 전하는 음반이 여러가지 많은 언어로 에티오피아 전역에 들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