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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ross of Christ - 그리스도의 십자가 (Bobby Conner-바비 코너)
arm  2007-04-09 10: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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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716


The Cross of Christ - 그리스도의 십자가
Bobby Conner-바비 코너

달콤한 봄날에서 제 관심을 연구로 돌리기 위해 애쓰고 있을 때, 따뜻한 햇살이 부드럽게 창문에서 불어오고 있었습니다. 밖의 풍경을 즐기기 위해 펼쳐진 공간속으로 자유롭게 나가고 싶은 유혹을 이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거기 앉아서, 저는 제 초점을 다시 책상위에서 쉬고 있는 펼쳐진 성경과 역시나 완전히 깨끗한 메모장으로 되돌렸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메시지를 나누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고 이 중요한 주제로 설교 원고를 작성하는 중이었습니다. 30여년의 설교 생활동안, 저는 이 주제를 많이 설교했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깊고도 더 신선한 무엇인가를 알고는 싶었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서는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평안히 앉아 있는 상태가 급격히 바뀌려 하고 있었습니다. 제 전 인생동안 가장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경험 중 하나를 막 하려는 것임을, 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성경과 설교 원고를 더 가까이 보려고 의자를 앞으로 밀면서, 저는 성령님께서 제게 십자가의 메시지들을 알게 하시기를 구했습니다. 단지 한 다발의 말씀으로 된 단순한 메시지 이상의 십자가를 알기 원했던 것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생명의 말씀을 듣길 바랬습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무엇인가가 되는 메시지를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갈급한 마음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하고 강력한 방법으로 그 메시지를 계시해주시길 진리의 영께 구했습니다.

갑자기, 예고도 없이, 빛보다도 빠르게, 저는 더 이상 제 연구실에서 안전하게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저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옮기셨던 것입니다. 바울이 성경에서 말한 것처럼, 제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고후 12;2) 거의 즉시, 저는 제 자신이 예루살렘의 복잡한 거리에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엄청난 폭도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 곳의 기류에서 제 영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드는 악한 동요(動搖)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앞에 펼쳐지고 있는 것을 보려는 깊은 갈망이 제 영 안에 있다는 것을 안 동시에 저는 달아나고 싶었습니다.

저는 엄청나게 많은 군중들 속에 서 있었습니다. 광기 가득 찬 눈을 흘기고 악으로 이를 갈며 일그러져 있는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저는 진실로 슬픔으로 가득 찬 누군가가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일에 기절할 정도로 놀라면서, 저는 이 장소로 이동된 그 속도를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다음으로 안 것은, 제가 “저리 비켜!”라고 저를 욕하며 소리치는 거대한 로마 군인들 곁으로 밀쳐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렸을 때, 제 눈이 주시하고 제가 본 것은 그 군중들이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계신 예수님.

저는 제 눈을 믿을 수가 없었고 섬뜩함이 제 몸 전체를 관통했습니다! 저는 결코, 그렇게 끔찍한 광경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분의 온 얼굴은, 머릿속으로 깊이 파고드는 매우 날카로운 못 같은- 가시관으로 인한 상처에서 흘러나온 엉기고 말라붙은 피로 덮여졌습니다. 그분의 심장이 고동칠 때마다, 진 붉은 피가 그 가시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와, 이마와 그 눈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주홍색의 피가 얼굴에서 가슴으로 떨어지고 천천히 먼지투성이의 거리에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저는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로 된 길의 틈사이로 그리스도의 피가 떨어질 때, 마치 이 땅이 울부짖는 것 같았습니다.

공포와 불신으로 그 광경을 보면서, 제 마음은 소용돌이 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것은 일어날 수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예전에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저와 그분의 눈이 마주쳤고, 저는 제 다리에서는 모든 힘이 빠져나가고, 제 몸 전체가 돌바닥으로 강하게 떨어지는 것을 느꼈으며 제 경험이 실재임을 의심 없이 알게 됐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곳으로 이동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기절할 것 같았고, 너무 충격을 받아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로, 저는 군중들을 따라 비틀거리며 걸었습니다. 저는 예수님이 그 무거운 십자가의 무게로 떠시는 것을 봤습니다. 그 길의 먼지를 불어오는 심한 바람이 주님의 피로 엉겨진 옷을 열어놓았고, 저는 주님의 등과 어깨의 상처들을 어렴풋이 봤습니다. 그 상처는 무시무시하게 깊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가혹한 채찍의 극심한 강타로 인한 그분의 육체의 찢겨짐...쩍 벌어진 틈, 울퉁불퉁함.. 저는 그분의 상처들에서 흘러나오는 그 피의 양에 너무 놀랐습니다.

오랫동안 우리는 그 도시의 바깥벽의 바람 부는 가파른 바위 길을 걸었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그 해골 골짜기의 정상에 다다랐습니다. 너무나 거친 군인들이, 그리스도를 땅에 밀쳤습니다. 주님이 그곳에 거칠게 내던져지자, 폭도들은 악마적인 흥분과 들뜸으로 끓어올랐습니다. 그들의 사탄적인 흥분은 악한 기대의 소용돌이를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저항이나 싸움 없이, 그리스도 예수는 팔을 펴셨습니다. 대못이 박혀지는 위치에 그 팔을 놓으시며, 주님은, 부끄러움도 개의치 않으시고, 고통으로부터 주춤거리시지도 않고, 기꺼이 그분 자신을 십자가에 박히도록 내어주셨습니다.

악한 영들이 무겁게 덮음으로 공기 자체가 너무나 짙어서 숨쉬기조차 어려웠습니다. 피와 사람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너무나 강해서 숨도 못 쉴 정도였습니다. 저는 군인들에게서 나오는 술과 싸구려 맥주냄새의 구역질나는 향을 맡았습니다. 저는 주님의 손을 찢고 그분의 발을 뚫는 대못들이 박히면서 나는 둔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마치 모든 장면이 천천히 하나하나 보여 지는 것 같았습니다. 십자가는 거칠게 파 놓은 구멍 속으로 넣어져 들려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은 극도의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나타냈습니다. 저는, 대못으로 온몸의 무게가 지탱되면서 주님의 목에서 나오는 깊은 신음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결코 심장을 부수는 이 순간의 너무나 힘들었던 소리들과 장면들과 냄새들을 잊지 못합니다. 마치 시간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거기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어떻게 지났는지 셀 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 입술에서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울었습니다. 멀리 달아나고 싶었지만, 저는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고, 어느 누구도 감정과 느낌들이 그렇게 상반되는 상황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곳은 자비의 장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자비로운 행동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결코 제가 직면했던 감정들의 역설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죄 없고 죄를 알지도 못하는 분이 죄인처럼 죽고 있다는 것. 완전한 분이 사악한 것들에 의해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사악한 것들이 놀라우신 분을 향한 증오를 풀어놨습니다. 잔인한 십자가에 죽임 당하신 의로우신 분이 반역자들을 위해 죽고 계셨습니다.

눈을 들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면서, 그분의 얼굴에 나타난 고통이 제 마음속에 참을 수 없게 다가왔습니다. 제 다리에서 모든 힘이 빠져나갔고, 저는 제 자신이 땅바닥에 심하게 넘어진 것을 느꼈습니다. 질겁하고 망연자실해 하면서, 저는 무릎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했고, 땅에 부딪혔을 때 찢어진 입술에서 흐르는 피의 맛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눈을 다시 들어, 저는 제 자신이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도록 했습니다. 그러자, 더 분명하게 선지자들이 했던 말들의 의미를 알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사 53:2).” 저는 그분의 얼굴이 전에 봤던 어떤 모습보다도 더 손상되었음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얼굴에서 수염을 베어냈기 때문에 그 살은 누더기처럼 되었고 찢겨졌던 것입니다. 군인들의 반복적이고 악의적인 주먹질이 귀중한 우리 주님의 얼굴을 상하게 했던 것입니다.



O Sacred Head, Now Wounded

오 신성한 머리시여, 지금은 상처 입으신

오 신성한 머리시여, 지금은 상처 입으신 - 슬픔과 부끄러움이 내리 누르네

이제는 멸시하는 군중들에 둘러싸여 - 가시 면류관, 오직 그분의 것;

고통으로 어찌 창백하신지 - 심한 모욕과 경멸도!

아침 같이 밝았었던 - 그 모습이 어찌 그리 쇠약하신지요!

예수님께서 겪으셨던 고통은 십자가를 훨씬 넘어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인간의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저와 같은 그런 죄인들을 속죄하기 위해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심으로 그분의 육체는 멍드셨던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엄청난 죄인임을 고통스럽게 깨달았습니다. 이 노래의 가사가 제 마음속에 고동쳤습니다. “영광의 왕자가 죽으신 그 놀라운 십자가를 생각할 때, 내가 아는 가장 귀한 것은 죽는 것이네, 내 모든 자랑의 유혹을 쏟아버리네.”

저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고통스러운 숨을 내쉬고, 숨을 헐떡이시며 이런 말씀을 하시기 위해 그 체중을 들어 올리시는 모습을 바라봤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후에, 저는 우리 주님의 바짝 마르고 부풀고 피나는 입에서 나오는 가장 끔찍한 부르짖음ㅡ지금까지도 제 귀에 메아리치는ㅡ을 들었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이 물음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의 영혼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모든 영원중에 처음으로, 아들과 아버지는 분리되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맨 처음으로 아버지가 아닌 하나님께 부탁하셨던 것이었습니다. 왜입니까? 이제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아졌기 때문입니다 ; 그분께서 직접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던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눈이 정결하셔서 우리 죄를 참아보지 못한다(하박국 1:13)고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아들에게서 등을 돌리셨던 것이고, 그리스도는 그분의 아버지에게 버림받았던 것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26:39).라고 기도하셨을 때 없어지길 구하셨던 것은 이 고통이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께 버려지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그리스도는 아들로서 죽은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서 죽은 것입니다.(고후 5:21,갈 3:13). 이 일이 일어났을 때, 그분의 마음은 부셔졌습니다. 시편기자가 예언했던 것처럼, “내 마음은 촛밀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시22:14).

그 때에, 크게 부르짖으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라고 하셨습니다. 생명이 떠난 그분의 머리가 가슴으로 떨어졌습니다. 온 땅이 회전하고 흔들렸습니다. 도처에 무서운 어둠이 있었습니다. 저는 어둠속에서 나오는 비명소리를 들었고 갑자기 제 입술에서도 비명소리가 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더 이상 십자가 밑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제 사무실로 돌아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비명은 계속 제 귀에 메아리치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 시대의 그 극적인 사건을 목격했다는 것을 깨닫자  온 몸이 떨렸고 심장이 마구 뛰었습니다.

이 시간동안 제가 경험한 모든 것을 단지 말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저는 성령님께서 살아계신 그리스도와 더 큰 친밀함을 갖도록 우리 영혼에 불타는 열정을 창조하시기 위해 제 경험을 사용하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Ritual or Relationship-종교적인 관계 아니면 친밀한 관계

저는 이 시간동안 제가 보고 경험했던 모든 것을 밝힐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결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었습니다. 또, 저는 십자가를 설교하는 것이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롬 1:16)을 전에는 결코 납득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강력한 말씀을 기록했습니다. :

메시야인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힘을 잃고 그 십자가의 능력을 없어지게 하며 헛되고 열매가 없다고 표현하고 무가치하게 만들며 어떠한 효과도 없게 만들지 않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내용과 말씀이 멸망하고 지옥으로 가고 있는 자들에게는 완전히 어리석고 바보 같지만, 구원을 받는 사람인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고전 1:17-18, -Amplified-를 번역한 것임).

십자가의 메시지를 잘못 다루는 것이 그런 충격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것입니다. 바울의 이 말씀을 면밀히 살펴보세요. 그는 우리의 설교가 유창한 화술로 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을 밝혀주시는 하나님의 진리를 그대로 알리며 순전하게 선포해야 함을 경고했습니다. 우리의 부족한 설교가 십자가의 메시지에 대해서 이런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에 대해서 들어보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

... 힘을 잃고

... 그 십자가의 능력을 없어지게

... 헛되고 열매가 없다고 표현하고

... 무가치하게 만들며

... 어떠한 효과도 없게 만드는

십자가의 그 힘을 세상이 빼앗을 수도, 없앨 수도 없다는 면에서 우리가 결코 그리스도의 희생을 절충하지 않기를.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위해 이루신 모든 것을 받게 하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값없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분이 죽음과 지옥과 무덤을 이기셨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서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진부한 장식이나 우리 목에 걸고 다니는 감상적이고 의식(儀式)적인 어떤 보석이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십자가는 바로, 타락한 인간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의 정수입니다. 죄에 붙잡히고 죄를 짓는 것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인류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끝내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단순한 종교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관계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이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The Cross Was by Divine Design-십자가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저는 십자가가 타락한 인간을 속죄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십자가는 결코 우연히 일어나지도 임의로 일어나지도 않은 것입니다.(사 53:10-12). 그리스도께서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요 12: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으니...”(고전 15:1-4)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는 우리 죄를 위한ㅡ오직 우리들의 죄뿐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요1 2:1)화목 제물인 것입니다. “화목 제물”이라는 말은 우리 귀에는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채무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는데 쓰인 것입니다. 우리가 쓰는 “화목 제물”은 hilasmos라는 희랍어이고, 그것은 “자비로운, 호의를 가진”이라는 뜻의 hileos와 유사한 뜻입니다.

이 말은 “보상, 죄가 덮어지고 면제받아진 것을 뜻”합니다. 그 말은, 죽음으로 속죄의 제물이 되셔서, 그분 스스로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죄인들에게 자비를 보이시는 자격이 되심을 나타내시면서 요한일서 2:2과 4:10에 “화목 제물”로써 그리스도 자신으로 인한 새 언약을 나타낼 때 쓰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요구들을 충족시키며-속죄하는 것과 관련된 귀하고 강력한 말입니다. 하나님은 완전히 거룩하시고, 그분의 거룩한 심판은 죄 있는 인간이 벌을 받아야만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그분은 우리의 죄를 스스로 모두 담당하시고 우리를 죄의 삯인 사망에서 건지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죄 값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도록 기꺼이 지불한 값을 대면하여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혼자셨습니다.;그분의 어머니와 세 명의 여인들과 사랑을 받은 제자인 요한을 제외하고는, 모든 제자들은 그분을 버려두고 갔습니다. 그분의 죽음은 괴로운 것이었고 굴욕적인 것이었습니다.

보통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은 십자가에 며칠씩 매달려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관한 중요한 사건들은 이미 예언자들에 의해 예언되었었고 모든 것이 기록된 대로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미 채찍질당하셨고 막대기로 얻어맞으셨고, 가시 면류관이 그분의 두개골을 뚫고 들어갔습니다. 그분이 오후 중반에 죽으신 것은 놀랄 일이 아닌 것입니다. 이것은 산제물이 되신 양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을 실현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저녁쯤에 죽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산 제물인 어린 양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대적들; 죄, 사탄과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세기를 거쳐 크리스챤 작가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찬양하는 노래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라고 외쳤습니다.

Deutz의 대수도원장인  Rupert 는 12세기 초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천국의 문이고, 낙원의 열쇠이며, 악마의 추락, 인류의 향상, 우리의 자유를 위한 상이다.”라고 썼습니다. 진실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우리 믿음의 안전장치이며, 우리가 믿는 것의 확신이고 사랑의 보좌입니다. 십자가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신호이고 죄 사함의 증거입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셨고 우리의 형벌을 속죄하셨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나라의 평화, 기쁨과 의로 가는 길이고- 죄, 절망과 죽음을 이기는 길입니다. 십자가의 길을 기쁘고 소망하고 확신하며 예수님을 따라서 기꺼이 가는 것은 얼마나 축복받은 것인지요.

베드로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벧전 3:18)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와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의 희생은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궁극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아버지의 구속의 사랑으로 인한 선물이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의 결정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see 요일 4:8, 요 3:16).

십자가는 단지 화해 그 이상을 훨씬 넘어선; 구속과 완전한 회복-타락한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며 살도록 하는-을 이루었습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모든 것들의 완전한 회복과 완성이 될 것이라는 예언적 약속이 있습니다. (행 3:21).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을 통해 하늘나라의 능력 속으로 들어갈 문이 열린 것입니다.

죄는 악의 뿌리를 제거하기 위해서 용서받어야만 하고 정결케 되어야만 합니다. 십자가상에서 이루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능력은 단지 죄의 열매만 처리하신 것이 아니라 그 뿌리까지도 처리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전혀 그분 앞에 갈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과 분리되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완전히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히 10:19-23).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끝내신 일로 인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신 일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어느 누구라도 구원받을 것이기 때문에,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그리스도 그 한 분만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구원이 없고, 십자가를 지셨던 그리스도 안에만 구원이 있습니다. 저는 십자가 목걸이를 하거나 지니고 다니며, 죄에 활짝 열려진 삶을 사는 타락한 죄인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그 분 자체를 경배해야 합니다. “종교”는 십자가를 높이지만, 진정한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높여야만 합니다. 구원자를 거부하면서 상징(십자가)만을 받아들이지 맙시다. 종교적인 받아들임과 구속자와 연합하며 사는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3-4).”입니다. “성경대로”라는 말을 주목해서 보십시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의도하지 않거나 몰랐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요 18:37).”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우리에게 주 예수님께서 그분의 십자가 지심을 미리 말씀(예언)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마 10:38, 막 10:21, 눅 14:27).

죄 많은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희생은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예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 15:13).”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정확히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기꺼이 타락한 인간을 속죄하시기 위해 그분의 생명을 대속물로 주시러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롬 5:6-7).”고 말합니다. 우리는 죄를 범한 자들이며 마땅히 하나님께 심판 받아야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기꺼이 그분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게 하셨고, 그래서 우리 각자가, 우리의 주인과 구원자로 주님을 받아들임으로써, 죄로 인한 벌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어느 누구도 새 언약을 가르치는 데 있어,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음으로 죄인들을 대신하심 같은- 이미 이루신 것을 보지 못할 수는 없습니다. 고난의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죽음은 대신해서 받으신 것이었고,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받아야 될 죽음과 벌을 대신하셨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구원의 모든 축복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대신하심으로써 믿는 자들에게 귀속된 것입니다.;“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십자가, 그리고 십자가에 대한 설교는 기독교의 핵심이고 중심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 12:32).”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담대하게, 기존에 잘못된 메시지에서 변화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하도록 도와주시길..

우리는 그분의 아들을 기꺼이 십자가의 희생으로 삼으신 것을 넘어선 것 이상으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더 큰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은 패배가 아닌 승리를 전하는-“다 이루었다.”였습니다. 이제 싸움은 끝났고 전투에서 승리했음을 아시면서 그분은 머리를 숙이셨고 그분의 영은 떠나셨습니다. 그 십자가위에서도, 예수님은 승리의 기쁨을 아셨습니다. 아버지께서 꼭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그분을 이 땅에 보내신 것이 이제 이뤄진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드리셨고,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셨습니다. (히 9:24-26)

최종적인 질문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 우리 각자의 삶에 죄에 대한 논쟁이 자리 잡고 있을까? 우리는 진실로 말할 수 있습니다. “다 끝났다!”고. 이것은 오늘날 살아가고 있는 모든 사람이 직면하고 있는 중대하고 근본적인 물음입니다. 우리는 바울이 한 것처럼-“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고후 5:8)”-고 담대한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습니까? 다음에 쓰여 진 오래된 놀라운 찬양의 가사를 생각해보세요. 오래전에 쓰여 졌지만 여전히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고 영감을 불어넣고 있습니다.







놀라운 십자가를 생각할 때
영광의 왕자가 죽으신 곳에서
내가 아는 가장 귀한 것은 죽는 것이네
내 모든 자랑의 유혹을 쏟아버리네
주님 허락지 마소서, 저로 자랑하는 것을
나의 하나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있는 구원
나를 극히 유혹하는 것들은 모두 헛되네
나는 그분의 보혈 앞에 그것을 드리네
보라, 그분의 머리에서, 그분의 발에서 흐르는 피를
슬픔과 사랑이 어우러져 흐르네
그런 사랑과 슬픔이 만난 적이 있을까
가시로 만든 면류관이 그렇게 귀할 수 있을까
나의 모든 본성의 왕국은 무너져 버렸네
사랑..그 놀라운..너무도 거룩한,
나의 영혼, 나의 삶, 나의 전부를 드리네

물을 것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부활하신 구속자는 바로 우리가 가진 최고의 것-전부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실 건가요? 오늘 여러분의 삶을 그리스도께 드리세요. 바로 지금! 바로 여러분의 최고의 것 : 여러분의 마음, 삶, 그리고 모든 것을요. 오직 그럴 때만이 여러분의 삶은 열매를 맺게 되며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받을 수 있을까?”는 질문이 있습니다. 답은 간단하게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행 16:30-31).”

구원받기 위해서, 사람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그의 마음과 삶에 영접해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 3:23)”라고 말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고, 그것은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를 의미합니다. 롬 6:23)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로 우리를 대신하셨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 죄를 완전히 대속하셨습니다. 그분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는 자유롭게 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엡 2:8).”라고 썼습니다.







1700년대 초기에, Isaaac Watts는 주님의 자비와 희생적인 사랑을 표현하는 이런 의미 있는 글을 썼습니다.

At The Cross 십자가에서
아아, 우리 구세주가 피 흘리셨구나- 나의 통치자는 죽으셨을까?
그분은 그 신성한 지위를 바치셨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제가 저지른 죄들이 없었더라면 - 그분은 나무에 달려 그렇게 신음하셨을까?
놀라운 긍휼, 헤아릴 수 없는 은혜 - 그리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
태양아 어둠속에 잘 숨었도다 - 그분의 영광이 보이지 않도록
그리스도, 만물의 창조자의 죽으심을 생각하라 - 인간- 피조물의 죄를 위하여
슬픔의 빗방울은 결코 되돌려질 수 없네 - 내가 지은 사랑의 빚
여기에, 주님, 저를 드립니다 -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여러분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여셔서,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영원한 구원의 선물을 받으십시요(요 3:15-19).

At Calvary 고난 가운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헛되고 교만한 가운데 보냈는지요

                                       - 나의 주님을 못 박는데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고통가운데 죽으신 것이 저 때문인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으로 마침내 저의 죄를 알았습니다.

                                         ; 그제야 저는 경멸했던 그 법에 떨었습니다,

제 죄 된 영혼이 애원할 때까지 그리스도의 고난을 찾았습니다.

이제, 예수님께 모든 것을 드립니다, 이제 기쁘게 그분을 나의 왕으로 모십니다

이제 제 기쁜 영혼은 오직 주님의 십자가에 달리신 고난에 대해 노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 구원을 향한 사랑! 오, 인간이 받을 수 없는 은혜!

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고난의 시간동안 겪으셨던 큰 심연(深淵),




어찌 그리 자비가 크신지요, 얼마나 값없이 그 은혜가 주어지는지요

;절 ... 용서하소서; 거기서 제 짐 진 영혼이 자유를 찾았습니다,

그 고난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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