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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도- 고전 1:18-25
arm  2007-06-14 04:17:12

Point : 35520

조회 :2,047


십자가의 도

고전 1:18-25
  
  
고 박봉랑 목사님 영전 앞에 머리 숙여 심심한 애도의 예를 올립니다. 저는 그저께(4월 24일) 저녁, 상가로부터 박 목사님이 서거하셨다는 부음(訃音)과 더불어 장례식예배의 설교말씀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이 부탁을 듣고 잠시 묵념하는 중에 박 목사님의 생전 얼굴 모습과 아울러 지금 봉독한 성경말씀이 불현듯 내 머리 속에 선명하게 떠올랐습니다. 오늘의 본문, 고린도전서 1:18-25절 말씀은 로마서 1:16-17절 말씀과 내용은 거의 일치합니다. 바로 이 말씀은 신학자 칼 바르트가 삼십대 후반에 썼다는 그의 신학저서 {로마서 강해}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고 박봉랑 목사님이 필생을 다하여 바친 신학수업이 칼 바르트의 신학 영역이요, 그의 학문적 연마의 근거와 주제 또한 이 성경 말씀에 집약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글에서는 "십자가의 도"라 했고 로마서 1장에서는 "이 복음은"(1:2)이라고 첫 말을 시작했습니다. 공동번역성서에는 십자가의 말씀, 어떤 현대어영어성서에서는 십자가의 도를 "십자가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메시지"라고 그 내용을 풀어서 쓰기도 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십자가의 도는 곧 이 복음이요, 이 복음은 곧 십자가의 도와 일치합니다. 개역성서를 번역한 분들이 십자가의 말씀을 십자가의 도라고 했을 때, 그분들은 많은 생각을 거듭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십자가의 말씀, 즉 이 복음을 십자가의 도(道)라고 표현했을 때엔 우리 선조들, 특히 유교적 문화전통에 영향을 받은 천도(天道), 인도(人道)등의 특성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이 도(道)는 인간이 갈 수도 있고 또 안 갈 수도 있는 선택 가능한 두 길 중 한 길이 아니라, 이 길 외엔 달리 갈 길이 없는 당위(當爲)성을 전제한 표현으로 이해되었던 것 같습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십자가의 말씀, 즉 이 복음이란 주제를 단지 학문적·이념적·사상적·종교적 개념을 규정한 논리의 표현으로서가 아니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바울의 이 말씀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역사적 사건에 대한 반복적 증언일 뿐만 아니라 그 증언자인 자기자신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로서 자기자신을 공증하는 증언이라는 점입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리스도 십자가의 말씀은 그 누가 십자가에 죽었다는 사실을 그 누구에게 설명하고 해설하는 연설자로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도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힌 자, 십자가의 흔적을 지고 가는 자, 날마다 그리스도 함께 십자가에 죽는 자로서 즉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안에서 그의 십자가의 죽음와 일치시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바울의 십자가복음의 증언을 또 다시 한국에서 그의 신학적 주제로 받아 필생을 다하여 증거했던 분이 바로 오늘 이 시간 마지막 전별을 고하려 하는 박봉랑 목사입니다. 그는 이 십자가 복음을 받은 때로부터 이 복음에 사로 잡혀 버린 자, 그 자신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 스스로 자기를 그 십자가에서 떼어 낼 수 없는, 그래서 천생의 운명과도 같이 십자가를 진자로서 십자가 복음의 메신저가 되어 살다 가신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의 증언자입니다.

  지금 십자가에 달려 피를 쏟고, 살이 찢기고, 뼈가 부서지고, 조롱을 받고, 능멸을 받으며 죽는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렇게 날마다 십자가에 죽으면서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의 메신저로 종신한 신실한 증인을 우리 앞에 모셔놓고 있습니다.

  이처럼 주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각각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르지 않으면 결코 십자가 복음의 참 증거자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 복음의 증거자는 자기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음이 없이는 증거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십자가의 도가 저것이 아닌 이것이다로, 해설자가 아닌 증언자로서 자기자신을 십자가 복음에 못박고 십자가와 일치시키지 않으면, 십자가 복음의 참된 증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바울이 말한 대로 그리스도 예수의 종(노예)이 된 자의 운명을 감수함이 없이는 십자가 복음의 전파자가 될 수 없습니다.

   이 자리에 있는 우리는 대부분 박봉랑 목사가 살아온 생애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신학도로서, 신학교사로서, 또 목사로서, 일생동안 곁길에 들어서지 않고 곁눈 팔지 않고 그의 인생을 일관하여 오직 그 한 길에서 봉사하시다가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살아오셨던 걸음걸음이 십자가에 못박힌 자로서 피흘림과 아픔과 고독함과 무시당함과 업신여김 받음과 억울함과 곤궁함과 울부짖음의 연속이었습니다. 세계의 명문 하버드대학 신학박사가 평생 그의 자녀들의 교육비도 제대로 뒷받침 할 수 없었고, 최저생활비조차도 겨우겨우 조달하며 살아오셨습니다.

  대학의 학장직을 맡아 달라는 요청에 "학자로서 내 남은 생애에 최소한 책 몇 권을 써 놓고 가야 하지 않겠느냐"며 굳이 그 청을 사양하시면서 홀홀히 평 교수로서 종신하셨던 분을 지금 우리 앞에 모셔놓고 앉았습니다. 이 분을 우리는 어떻게 말해야 하겠습니까? 꼭 알맞는 속세의 말 한마디가 있습니다. 미련한 것. 세상에 저렇게도 미련하게 살 수 있는가? 그런데 이 속된 말 한마디가 이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 되고 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는 사도 바울도 십자가의 복음을 증거하는 자, 십자가를 지고 죽은 자는 미련한 자라는 것을 잘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사도는 이 미련하게 사는 자. 미련하게 살다가 미련하게 죽는 자를 미련하게 보고 미련하다 말하는 자가 "멸망할 자"들의 실로 미련한 논리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들에게 미련하게 보이는 그 미련함이 구원을 얻은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지혜요, 능력이라는 말씀입니다. 계속하여 사도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사람의 지혜가 다하고 다한 인간 지혜의 종점은 하나님의 상식의 시발점입니다.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인간의 강함이 우주를 정복했다 해도 그러나 하나님은 그저 자리에서 털고 일어서서 아담아(사람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십니다. 이 낮은 물으심에 인간은 벌써 나무그늘에 몸을 숨기게 되는 약자라는 말입니다. 이 하나님을 만나고 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이 하나님께 종신 고용된 자는 그때부터 하나님의 지혜로서 살고 하나님의 능력의 도구로서 살고 죽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고 칼빈과 칼 바르트가 그랬고 또 우리의 친구 박봉랑 목사도 그렇게 살다가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의 논리는 무엇입니까? 이 성경에 쓰여 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는 유대인들이 구하는 표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헬라인들의 지혜의 논리를 십자가의 죽음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예수 십자가의 죽음은 엄연한 하나의 사건이요 사실이었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지혜가 만들어낸 교묘한 정치적, 종교적 한 사건이었습니다. 죽으면 그만이다라는 단순한 세상 논리의 귀결입니다.

  그래서 세상지혜로 사는 자들은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세상지혜로 사는 사람들은 그러한 사람을 미련한 것 재수 없는 자라 합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 십자가의 복음으로 살고 죽는 자는 우리의 동지 박봉랑 목사처럼 미련한 사람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증거의 사명을 지고 사는 목사는 운명적으로 이 세상의 지혜로서는 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참된 목사에게는 십자가가 목에 거는 장식품일 수도 없고 십자가를 졌다 벗었다 할 자유가 없습니다. 인생을 거는 마지막 결단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는 박봉랑 목사님은 한 사람의 저명한 신학자라고 말하지 않고 철저한 십자가 복음의 증언자였다고 말하기를 원합니다. 그는 그의 신학적 수업이 그리스도 십자가 복음에 귀착되던 때부터 그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그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더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더 강함을 믿어 최후 승리를 보장받은 자로서 도도하게, 침착하게, 온유하고 겸손하게 그의 사명을 일관하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참 목사요, 참 목사의 스승으로서 어떻게 살고 죽어야만 마땅한가를 스스로 표본이 되심으로 산 증거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떠나가시는 고 박봉랑 목사님께 지극한 경의를 표하여 드립니다. 또한 참 목사요, 참 목사의 스승이셨던 고 박봉랑 목사님을 우리가운데 보내주신 하나님께 만공의 감사와 찬양을 드리므로 고인을 전별하는 마지막 예배를 드리고 싶습니다. --조향록원로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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