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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중심성 1-4 - 제시펜 루이스
arm  2009-06-15 09:36:41

Point : 3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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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중심성 1-4 - 제시펜 루이스 | 기억하고 싶은 글   2009/06/15 09:32    


우선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해 선포된 말씀인 로마서 4:25를 살펴보기로 하자. 나는 최근에 포사이스 박사의 '십자가의 중요성(The cruciality of the Cross)'이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과 충격을 받았다. 그는 그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직 십자가를 바르게 이해할 때에만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영적 권위와 생명력이 충족될 뿐 아니라, 복음의 올바른 방향 제시와 그 최종 목표가 달성된다"

   나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갈보리 십자가야말로 핵심 없는 이 시대에 참된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 주는 유일한 '구심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핵심이 된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우주를 다스리시는데 있어서 그 모든 면에서 중심 축 역할을 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진리의 올바른 관점과 균형을 잃어버리고 '막다른 골목에서' 헤매는 이유는 바로 이 십자가의 '구심점'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그리스도를 더 깊이 알고 체험하기 위하여 진리의 유일한 구심점인 그리스도의 십자가 주변으로 모여야만 한다. 그렇게 할 때 성령님은 이 십자가라는 구심점을 통해 신앙 생활과 관계된 다른 깊은 진리들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실 것이다.

   성경은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넘겨지셨으며, 우리의 칭의(稱義)를 위하여 다시 일으켜지셨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다(롬 4:25). 바울 서신에서 이 같은 표현이 여러 번 나오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대속과 속죄를 위한 죽음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죄사함과 죄인의 칭의(稱義)라는 면에서 중심 되는 역할을 한다. 로마서 5:6-9를 보자. "이는 우리가 아직 힘이 없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정해진 때가 되어 경건치 아니한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음이라. 의로운 사람을 위하여 죽는 자가 거의 없고, 선한 사람을 위하여 용감히 죽고자 하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으니, 이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시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되었은즉, 더욱더 그분을 통하여 진노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니..."

   이 말씀은 매우 간단하고 의미가 명백해서 마음이 열린 자라면 누구든지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고, 우리는 '그분의 피로 의롭게 되었으며',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분의 부활의 생명에 동참'하게 됨으로써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십자가는   갈보리에서의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인들을 위한 대속의 죽음이었으며   갈보리에서 하나님은 원수 되었던 죄인들과 화목을 이루셨고   주님은 갈보리에서 죽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인류의 구원을 이루셨다는 기독교 신앙의 근본적인 세 가지 진리를 선포하고 있다. 이제 죄와 세상과 육체(肉體)와 사탄에 대한 승리의 중심이요 구심점으로서의 십자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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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죄에 대한 승리의 구심점이다

   우선 죄에 대한 승리의 구심점으로서의 십자가의 의미를 조명 받기 위해서 로마서 6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로마서 6장은 신약성경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십자가의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이 말씀 속에는 갈보리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깊은 의미가 아주 단순하고 명백한 언어로 제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진수가 놀라울 정도로 완전하게, 또한 포괄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신(世上 神)'들이 로마서 6장의 진리를 한낱 '신학자(神學者)'들의 학술적인 해석과 연구의 도구로 변형시킴으로 많은 성도들이 이 단순한 진리를 깨닫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로마서 6장이야말로 성도들의 경험적인 측면에서 볼 때 복음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의 공의에 대한 보상이지만, 로마서 6장은 특별히 죄인이 바라보는 측면에서의 십자가를 보여주고 있다. 즉 죄인의 관점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는 죄인이 어떻게 죄와 세상과 육신과 마귀의 권세로부터 해방을 받을 수 있는가 하는 실제적이고 중요한 진리가 제시되어 있다. 바울은 로마서 6장을 통하여 십자가의 진리를 확고하게 세웠다. 바로 그 말씀 안에 성도들의 신앙 생활에 성장과 승리를 가져다주는 구심점으로서의 십자가의 반석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제 로마서 6:1-2의 말씀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읽어보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가 넘치게 하려고, 죄 안에 거하겠느뇨?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리요?" 여기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죄인의 관점에서 십자가가 제시되어 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가 단순히 대속의 십자가가 아니라 옛 창조의 생명에 종지부를 찍고 죄의 권능으로부터 해방을 얻게 하는 죽음의 십자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죄의 권능으로부터의 해방은 그것을 이기려는 노력에 있지 않고 단순히 그것에 대해 죽는데 있다. 바로 여기에 신앙 생활의 승리의 비결이 숨겨져 있다! 이와 같이 십자가의 깊은 진리는 사실상 아주 단순한 것이다.

로마서 6장을 이해하는데 실제로 어려운 점은 신학적인 면보다는 경험적인 면이다. 우리가 진실로 죄의 권능으로부터 해방되기를 원한다면, 먼저 우리는 그 실제적인 체험이 우리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진리의 말씀 그대로를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 단순한 영혼들만이 체험할 수 있다. 타락한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십자가의 실재를 경험적으로 아는 것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만일 모든 성도들이 십자가의 깊은 진리를 실제로 경험하고 그들의 생활 가운데 적용시킨다면 지옥의 권세(權勢)와 어둠의 왕국은 크게 떨며 무너져 내릴 것이다.

   로마서 6장에는 세상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의 신비가 담겨 있다. 6장에 나타난 신비는 곧 십자가가 구원자, 곧 그리스도 자신의 십자가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죄인들이 체험해야 할 십자가라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서 로마서 6장에 나타난 십자가의 진리는 마치 나무의 뿌리가 그 나무의 생존 여부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근본과 뿌리로 여겨져야 한다. 나무는 뿌리와 떨어질 수 없고, 또 땅 속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땅을 의지할 때에만 외적인 성장이 가능하며 생존을 위한 강한 생명력을 부여받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인 삶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한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리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라고 바울은 로마서 6:2-3에서 십자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이 구절에 나타난 '우리'라는 말은 성장을 갈망하는 소수의 성도들뿐만 아니라. 이제 갓 거듭난 신앙의 '어린아이'들까지도 포함한다. 만일 거듭남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이 이 복음의 말씀으로 거듭났고 또 신앙 생활의 시초부터 이 말씀의 권능을 경험했다면,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방황을 하는 자나 신앙의 낙오자들이 훨씬 적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십자가의 말씀을 통해 더 풍성한 생명력을 부여받게 될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실제로 살아 역사 하시는 구원자로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그 말씀을 읽어보자.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더 이상 그 가운데 살리요?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은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아 그분과 함께 묻혔나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에 의하여 죽은 자들로부터 일으켜 세워지심 같이, 우리 또한 생명의 새로움 안에서 걷게 하려 함이라." 조심스럽게 다음 구절의 말씀도 상고해 보자.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함께 심기어 있으면, 또한 그분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되리라". 앞의 몇 구절을 통해 우리는 십자가에 관한 말씀이 반복되면서 십자가가 바울이 전하는 메시지의 '구심점'이 되고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죽은 우리" - 십자가
"그분의 죽음" - 십자가
"그분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 십자가
"죽은 자" - 십자가
"그분의 죽음" - 십자가

   또다시 로마서 6:5-8은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것은" - 십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 십자가

   이 십자가의 진리가 얼마나 명백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인을 위한 십자가였다. 왜 그런가?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생명, 곧 "옛 사람"은 완전히 부패되고 타락되어 있었다. 뱀이 준 독소를 받아들임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뿌리는 물론 그 나무 전체가 썩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의 핵심은, 그분께서 다시 시작하셔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셔야 하는 재창조의 진리에 있는 것이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은 타락한 인류의 옛 아담으로서의 삶에 종지부를 찍고, 완전히 허물어지고 무너져 내린 토대 속에서 새로운 창조를 이루려는 계획을 갖고 계셨다. 왜냐하면 타락한 인간에게서는 생명력을 불러일으키거나 새롭게 할 수 있는 근거도 가능성도 전혀 없기 때문이다.    

   앞에 제시된 진리의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말씀이다. 마귀는 인류의 완전한 부패와 타락에 대한 교리를 흐리게 한다. 왜냐하면 인류가 완전히 타락하지 않았다면 십자가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완전 부패와 십자가에 대한 진리는 항상 공존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성령의 조명 아래 우리 자신 안에는 아무 것도 개조(改造)하거나 고쳐서 쓸만한 것이 없음을 깨닫고, 오직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주님이 갈보리에 가셨을 때 우리도 함께 갔습니다"라는 참된 고백만을 해야 한다.

"오 패배한 하나님의 자녀들이여! 이 진리의 말씀을 단순한 믿음으로 받아들이십시오! 곧 당신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는 사실입니다. 또 침례 받음으로 그와 함께 죽음에 동참하게 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영원히 매장되었습니다. 매장된 그 장소에 여러분을 떨어뜨리십시오. 그리고 죄에 대하여 죽은 당신으로 여기고 믿음으로 죄에 대한 죽음을 선포함으로 완전히 끝장을 내십시오.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에 동참하십시오. 그리고 주님 안에서 받은 새 생명의 진리를 당신의 것으로 여기고 선포하십시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오직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기초 위에 굳게 서서 행하는 신앙의 태도를 가질 때에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하실 수 있다는 놀라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런 십자가의 선포(preaching of the cross)야말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복음이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십자가의 진리를 전파해야 한다. 즉 십자가는 죄(罪)에 대한 승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해의 구심점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즉 십자가는 죄에 대한 승리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화해의 구심점이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복음이요 기쁜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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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세상에 대한 승리의 구심점이다

   우리는 바울 서신들을 통해 갈보리에서 이루어진 십자가의 완성된 사역의 여러 측면들을 살펴볼 수 있다. 또 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십자가를 중심으로 맴돌고 있음도 알 수 있다. 특별히 갈라디아서는 십자가와 그리스도인의 생활과의 기본적이고 중요한 관계를 여러 곳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십자가의 서신"이라고 불린다. 갈라디아서 6:14에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대해 죽은 사실에 대한 확실한 말씀이 제시되어 있다.

   물론 그 구절은 바울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바울에게 사실인 것은 바로 우리에게도 사실이다. 바울은 '세상'을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을 유대교적 율법주의로 끌고 가는 매개체와 '유혹'으로 여겼고, 또 유대인들의 핍박을 피하려 하는 '핑계'로 받아들이고 있다. 사도 바울은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분에 의해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달려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그리스도인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었다 함은 그가 모든 측면에서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달림을 또한 의미한다. 그때 그는, 우리가 혹 잘못 오해하는 것같이 괴롭고, 기쁨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세계의 기쁨과 영광을 맛보게 된다. 진정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십자가가 아니라 십자가가 없는 그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자유케 하는 십자가이다. 곧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자유케 해서 이 세상에 살 동안 하늘 나라를 미리 맛보게 하며, 미래에 다가올 하나님의 영광에 동참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 안에 주어진 진리, 곧 십자가를 통하여 이루어진 세상으로부터의 자유를 내 것으로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을 세상을 위해 살 수 없고, 세상의 유행대로 옷 입을 수도, 세상의 풍습대로 행동할 수도, 또 그것을 본(本) 받을 수도 없다. 만일 이 십자가가 권능 있게 선포되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진정으로 그것을 믿고 행한다면 교회가 세속화(世俗化)되는 일은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한 가지 주목해야 될 사실은, 우리 안에 세상을 향하여 죽는 경험이 있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에 진정으로 동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십자가의 진리가 실제적으로 적용된 성도들만이 이 세상과의 '단절'을 경험하게 될 것이요, 마치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듯한 세상과의 '분리'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세상과 분리된 이쪽 편에 있을 때만이 저 건너편에 있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올바른 눈이 생기고, 십자가 위에서 세상을 볼 때만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같이) 그분의 긍휼과 희생의 영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당신은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함으로 이미 당신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이제 주안에 있는 당신의 위치를 굳게 지키고 세상으로 나가 세상에 속한 영혼들을 접할 때 그들의 어려움을 돌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를 세상과 세상의 모든 영들로부터 영원히 단절시키시고, 참 평화와 기쁨과 사랑의 세계로 들어가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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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육신에 대한 승리의 구심점이다

   또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육신(肉身)의 법으로부터의 해방의 구심점인 십자가를 제시하고 있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을 그 애착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달아 버렸느니라"(갈 5:24).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십자가의 진리의 사실을 믿는 성도들은 '육신의 정욕'과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실제를 경험하게 된다. 갈라디아서 5:16에서 '육신'과 '성령'이 본질적으로 상반되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는 성령이 우리를 지배할 때 육신의 정욕은 사라진다. 성경은 십자가를 통해 성령이 우리 안에 있는 '육(肉)'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신비를 계시해 준다(갈 5:24). 즉 '육신'은 단지 정지해 있거나 잠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렸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은 간단한 예로 우리들의 먹고 마시는 문제에까지 적용된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육신적인 향락이나 유행에 묶여 육신을 위한 물질적인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 불평을 함으로써 주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일들을 더 이상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는 그리스도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정욕에 빠진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육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십자가를 통해 승리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만일 그리스도인이 한 가지라도 육신에 묶여 있는 요소가 있다면, 그의 영적 생활은 즉시 그것으로 인해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육신을 그 애착과 정욕과 함께 십자가에 달아 버렸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의 모든 '버릇'과 '습관' 그리고 육신에 속한 모든 정욕과 애착을 모두 한꺼번에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는 담배 피는 것도, 알코올과 마약에 중독 되는 것도 포함된다. 위의 말씀은 우리의 육신이 영적인 의미로 십자가에 달리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또 생활적인 모든 관점에서 십자가에 달리는 것을 말한다(고후 10:3, 고전 6:1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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