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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막절(The Feast of the Lord)
arm  2010-04-27 22:24:17

Point : 35520

조회 :5,179


                                     초막절(The Feast of the Lord)

초막절, 초막절의 축제에 대해 알아봅시다.
수장절이라고도 말하는 초막절은 임시 거처 축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들 모두가 히브리어의 수콧(Sukkot)에서 나온 말입니다.

구약에서는 끝을 복수로 말하고 있지만 단수는 수카(Sukkah) 입니다.
수카(Sukkah)는 하나를 말하고 수콧(Sukkot)은 하나 이상을 말하지요.
그것이 무엇인가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매년 초막절 기간의 천막을 생각해 봅시다.  

초막절은 속죄일(Yorm Kippur)에 관련이 있기 때문에, 왜 초막 절기 이름들이 열방의 절기로 알려져 있읍니다.    
속죄일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을 위한 속죄를 하였습니다.
5일 후에 제사장은 70개 나라를 위해 속죄행사를 치르는데,
그래서 한 나라를 위해 소 한 마리씩 초막절 기간에 소 70마리를 도살합니다.  
바로 처음부터 하나님께서는 전 세계를 구원하시고 구속하시기 원하셨습니다.
지난주에 말한 것처럼 열방이 미리 알았다면 그들은 성전을 파괴하지 않았을 것이고 군대를 보내서 그것을 보호하였을 것입니다.
그들을 구속하기 위해 하나님이 쓰시는 바로 그것을 파괴하여 열방을 얻으려 하는 것이 사탄의 모습과 같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에 대한 다른 이름들이 있고 그것은 수확의 축제라고도 알려져 있습니다.

레위기 23장 41절부터 43절 까지 성경을 보며 시작해 봅시다.
이 전체 장이 성경의 모든 절기에 대한 주된 구절입니다.

이 장의 뒤에 보면 매년 7일씩 주 앞에 나와 절기를 지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절기는  약속, 정해진 시간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하여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절기에 대해서 들을 때, 음식을 생각하지만 히브리어로는 모엣(Moed)을 의미하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날을 재는 시계가 있고 여러분들을 위해 신성한 약속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대대로의 영원한 규례가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7째 달을 명절로 지키라.
이 7이라는 숫자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며칠간이나 지키라고 하셨지요?  7일입니다.

7째 달에 7일간의 명절입니다.
너희는 나와 함께 거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임시 거처에 거하라고 말씀하시지요. 이것을 봅시다.
7일 동안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은 뭐해야 하지요?
임시 거처에 거하라.

너희 전 세대들은 알라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던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임시 거처에 거하라고 하였노라.  
3번이나 주님께서 그들이 무엇해야 한다고 말하셨죠?
임시 거처에 거하라.

그들이 뭐해야 했는지 알았지요?
그것의 전체 목적은 ‘애굽에서 데리고 나온 것을 기억시키기 위함‘ 입니다.
성경의 수카(Sukkah)는 초막 또는 천막을 말합니다. 사실 여기서는 천막을 말하지요.

창세기 33:17절에서 야곱이 숙곳으로 가서 집을 짓고 숙곳을 만들었다 하는데, 실제로 이것은 히브리어이고 영어로는 가축을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 장소의 이름이 숙곳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수카, 무엇을 위해 만든 것이지요? 가축들을 위해서 입니다.

다음 구절 레위기 23:2절을 봅시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이것들은 나의 절기들이니 너희가 성회로 공포할 여호와의 절기들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전형적인 작은 수카 또는 그들이 세울 임시 거처입니다.  

천막, 임시 거주지인 이곳에 큰 기쁨이 있었고 나갈 수도 있고 음식도 먹었습니다.  
식탁도 있었을 것이고 여기에 포도, 바나나 그리고 이런 다양한 과일들을 차려놓았을 것입니다. 아주 재미있었겠지요
수카(Sukkahs)가 현재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해줍니다.

여러분 성경의 모엣(Moet)은 약속 또는 정한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히브리 단어로 절기를 말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달력에서 2000년 10월 15일을 봅시다.
그날은 고정된 날이지요. 맞습니까? 그렇게 그래서 하나님께서 달력에 한 날을 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달력이 있고 하나님의 달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달력으로 돌아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 만날 약속을 하려면 똑같은 달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신명기 16:16절에 모든 남자는 1년에 3번씩 여호와가 택하실 장소로 그의 앞에 나아올지라고 말합니다.  Matsa라고 불리는 무교절에, 그리고 안식일 또는 주중에 그리고 초막절 또는 수장절에 나오라고 하시지요. 신명기 16:16절 입니다.

1년에 몇 번 예루살렘에 나와야 한다고 말했나요?
3번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명령받은 오순절 전 1500년간 오순절을 지켜온 것을 모릅니다. 출애굽기 23장에서 똑같은 것을 말합니다.
1년에 3번 나의 앞에서 절기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요.  
유월절에는 무엇을 수확하지요. 보리입니다.
여름 오순절에는 밀을 수확하고요.
가을 과실 수확기에는 포도, 석류, 감람유와 그런 것들을 수확합니다.  

그래서 1년에 3번 나의 앞에서 절기를 지키라고 말하지요.  
무교절과 땅에 뿌렸던 노동해서 얻은 첫 과실을 거두는 절기, 그리고 곡식을 수확하는 절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초막이나 수장이라고 부르는 대신에 수확이라고 부릅니다.
마지막 수확은 대충 언제 하지요. 1년의 끝에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의 1년은 대략 10월 달에 끝나고요. 왜 나팔절이 그들 달력에 나와 있는지 설명이 되나요.

그들의 1월 1일이 전에 말한 밭에서 수고하여 거두는 나팔절이고 그리고도 모든 남자들은 주 앞에 1년에 3번씩 나와야 합니다.    
이것이 영어 번역으로 초막(sukkot)이고, 추수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 달력에는 추수 감사절이 있고 이것이 초막절에서 나왔지요.
추수 감사절의 개념은 수확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기억하겠지만 초막절은 수확을 거두는 절기였고 1년의 마지막에 있읍니다.  

마태복음을 봅시다.

주님이 자주 쓰시던 비유는 추수입니다.  
땅은 세상이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다.
그것을 뿌린 원수는 사탄입니다.

추수는 무엇입니까. 종말이지요.  추수하는 자는 천사이고요.
가라지는 수확 후에 거두어 불에 태워집니다.  
그래서 추수가 세상의 끝에 있는 것입니다.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시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들이리라.

절기들을 다양한 추수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유월절 바로 후에 큰 추수가 있습니다. 오순절 설교 때 3000명이 구원받는 큰 추수가 있었습니다.
종말의 추수는 가을 절기와 관계있을 것입니다.

계시록에서,  계시록을 봅시다. 이것을 계시록의 내용과 연관시켜 보려고 합니다.
추수꾼은 누구입니까.
성전에서 다른 천사가 나와서 구름 위에 앉은 그에게 소리 질러, 낫을 들어 거두라. 세상의 추수를 할 때가 되었다, 라는 이 때는 어느 때인가요?
다 익은 때이지요.  
제단에서 불을 가진 다른 천사가 나와서 날카로운 낫을 가진 사람에게 큰 소리로 소리 질러 날카로운 낫으로 그를 위하여 땅의 포도 송이를 거두라‘는 말은 무엇이고요? 포도도 다 익었습니다.  
포도 수확과 과일 수확과 그 시기를 보십시오.

유월절은 봄에 있었습니다.
오순절은 여름에 있습니다.

예언적으로 이런 사건들은 가을에 일어납니다.  
이런 절기들이 일년 동안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달력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이것들이 하나님의 계획된 일이냐, 아니면 또는 우연일까요.

하나님은 이것이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다는 것을 알기 원하시고 그래서 준비하라고 미리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절기를 연구해 보면 되겠지요.

그 후에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고 하나님의 분노의 포도즙 틀에 집어넣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그의 사람들 사이에 거하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와 동산에서 함께 거닐고 싶으셨으나 최초 범죄 후에 그들은 쫓겨났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사람들과 같이 계실 마음이 항상 있으셨습니다.

첫 번째 유월절 바로 그 날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시나요.  
출애굽할 때에 문설주에 피를 바르고 했던 모든 일 기억하지요?
그리고 홍해를 건너고 첫 번째 유월절 축제 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고 나서 바로 황금 송아지 사건이 일어났지요.

모세가 40일간 올라가 있다가 내려와 금송아지 사건을 처리하고 다시 산에 올라가 40일간 있었습니다.
다 하면 80일인데 10일이 사이에 있으면 90일로 총 3개월이 됩니다.
그 기간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3개월 후 모세가 속죄일에 다시 내려와 그들을 위해 속죄를 행한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가 산에서 내려와 Yom Kippur(속죄일) 의 날에 무엇을 했을까요.  

초막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법도를 배워왔습니다.
속죄일 Yorm Kippur 5일 후가 초막절입니다.  
그들은 첫 초막절에 초막을 지었습니다. 그 때 최초로 초막을 세운 것입니다.

출애굽기 35:20절을 봅시다.
이스라엘의 자손 모든 회중이 모세의 앞을 떠났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가 와서 회중의 천막(회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주께 예물로 드렸고 거룩한 옷을 위하여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팔찌와 귀고리와 반지와 목걸이와 여러 가지 금제품을 가지고 오고 사람마다 주님께 금 예물을 드렸다.
그들은 자원하여 드렸습니다. 금송아지 사건으로 죽지 않으리라는 것 때문에 그들 사이에 큰 기쁨이 있었고 즐거웠기 때문입니다.  

첫 초막절에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거하길 원하셨고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초막을 지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스가랴서14장의 ‘전쟁의 날에 그가 싸우시던 것 같이 주님께서 나아가 열방을 치시리라(14:3)  그 날에 그의 발이 감람 산에 서실 것이요(4절)
감람 산은 예루살렘 앞에 있고 정중앙에 서 있을 것입니다.(4절)
아직 안 이뤄졌지요.  예언적인 말이라는 말입니다.  
언제 일어질까요.  다시 성경을 봅니다.  

이방 나라들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16)  땅에 있는 족속들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오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인즉(17절)  
새 천년의 기간에 사람을 보내 초막절을 지키지 아니하는 나라는 비를 받지 못하며 애굽의 사람들이 올라오지 아니하면 비가 없겠고 역병을 만나리라.’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재앙을 만나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애굽에 대한 징계인데, 이 벌이 무엇을 하지 않는 나라들에 임하는 것이지요?  3번이나 말합니다. 초막절을 지키지 않는 나라들

그들이 과거에 초막절을 지켰던 것을 깨닫습니까?
우리는 새천년 통치 때에 초막절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마지막 때에 초막절에 무엇을 하게 될지 알아보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계시록 21:3절을 보면 ‘하늘에서 들려오는 큰 소리를 들었다’고 합니다.
장막이라는 단어가 나오지요.
하나님의 초막이 사람들과 같이 있고 그가 사람들 가운데 거하고 사람들은 그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 자신이 사람들과 같이 거하며 그들의 하나님이 됩니다.
그는 돌아와 감람산 정상에 서서 초막절에 새천년의 통치를 시작합니다.
그 후 1000년이 지난 후, 새 예루살렘이 초막절에 내려오고 그 분이 사람들과 같이 거합니다.  

계시록 21장을 더 읽으면 도성의 크기는 길이와 너비가 높이가 12,000 스다디온씩 으로 같으며 이것은 1500마일 입니다. 새 예루살렘 도성은 공중에 떠 있습니다. 이것이 계시록에서 말하는 것이지요  
초막절의 기본 개념은 전에 말한 것 같이 이 땅과 우리 몸은 임시 처소일 뿐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7일간 초막절 절기를 지킵니다. 주님에게는 천년이 하루이고요.  
7000년, 하나님은 사람에게 7천년으로 제한했다고 말합니다.
땅은 일시적인 것이고 새로운 하늘과 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사야 51:6절을 더 보면 다 하나님의 계획을 더 자세히 알게 됩니다.  “너희는 하늘로 눈을 들며 그 아래의 땅을 살피라. 하늘이 연기같이 사라지고, 땅이 옷 같이 헤어지며 거기에 사는 자들이 하루살이 같이 죽으려니와 나의 구원은 영원히 있고 나의 공의는 폐하여 지지 아니하리라. ”
그 모든 것들이 잠시 뿐이며 다 사라집니다.
또 고린도 후서 5:1절을 봅시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짓지 아니한 영원한 집이 하늘에 있는 것을 안다고 말합니다.”  
몸은 잠시이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에 영원한 집을 짓고 계십니다.

초막절을 통해 알려주시는 것은 이 세상이 잠시 뿐임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초막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트롱 사전 4636을 보면 Skenos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정신이 깃들어 있는 장소로서 초가, 임시 집, 우리 몸을 의미합니다.  
초막절과 임시 거주지인 육신사이에 어떤 연관성을 봅니까.?
요한복음 2:19절에서 예수님께서 성전을 허물라, 내가 3일안에 다시 세우리라고 말하지 않습니까. 성전된 그의 몸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베드로 후서 1:13,14절을 봐도, “내가 이 육신의 장막에 있을 때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하는 것이 좋다

주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것처럼 그는 이 장막을 벗어버릴 것을 알았읍니다.

또 베드로 후서 1;16절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언제 그것을 보았을까요? 변화산에서 입니다.(요17장)

마가복음 9장, 여기를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도 있다“  
그리고 6일 후에 예수님이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 그들과 떨어진 곳에서 몸이 변화됩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말하기를 초막 3을 짓겠다고 했지요. 주님은 언제 쯤에 다시 오실까요. 초막절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답하여,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으니, 우리가 초막 셋(Sukkah)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모세를 위하여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나이다.  초막절에 일어난 것이었기에 그가 초막 3개를 짓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초막절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초막 3채를 당장 짓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레위기 23장에서 7번째 달 15일 째, 과일을 거둬들인 후에 주 앞에 7일간 절기를 지키라. 첫날은 안식일입니다. 그날이 화요일이든 수요일이든 그날은 안식일입니다.
첫날이 안식일이면 8일째도 안식일이 됩니다.

그러나 8일째는 전의 7일과 별개의 것이고 매이지 않습니다. 유월절이 7일간의 무교절과 다른 절기인 것처럼요. 유월절은 7일간의 무교절 중 한 날이 아닙니다.

책으로 말하면 끝부분이고 초막절 8번째와 같습니다.  
7일간의 명절이 있고 그 말미에 하루의 명절이 있으나 함께 걸려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그것을 말하는 겁니다.
첫날에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화과 무성한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주 하나님 앞에서 7일간 기뻐하라.
기뻐하라는 명령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음 7일을 위하여 전날 해질 녁에 보채고 넋두리하거나 찌푸린 얼굴들하고 집안에 신포도도 있으면 안되었습니다.  

다음 7일을 위하여, 애들이 찌푸리고 있는 것을 아는 부모는 ‘네가 찌푸리고 있다. 웃어라’ 말하며 웃으면 애들이 약간의 엷은 미소를 보이다가 당신이 더 큰 미소를 지으면 애들은 덩달아 씩 웃게 되는 것 아시지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 다음 7일 동안 미소짓고 행복하라는 말이지요.   기뻐해야 합니다.

그것이 첫째 날과 여덟째 날입니다.
잠시 4종류의 식물이 무엇을 상징하는 지 말하고 싶습니다.
종려나무, 버드나무, 화석류 나무 가지,etrog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 안에서 그들이 준비하고 흔들었던 것이 이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2000년전에 기록된 요셉푸스의 이야기에 좋은 예가 나옵니다. 탈무드에도 나오는 이야기이고요.
악한 대제사장 한명이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제사장들이 악했고요.
헤롯이 뇌물 받고 임명한 사람들입니다.
그는 전제 예식을 싫어하였습니다.  

요셉푸스가 기록한 것 처럼 250만의 유대인들이 절기로 모였고
그들은 모든 etrog 과 lulav 를 준비하고 즐거워합니다.
이 대제사장은 제단에다 물을 붓는 대신에 땅에 쏟아버렸습니다.  
갑자기 약 1만개의 etrog 이 날아오고 그는 죽도록 두들겨 맞았습니다.
큰 소동이 일어났지요

로마병사들이 성전 주위에 벌 떼처럼 몰려들고
수천 명의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살해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이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은  대제사장 한 명이 한 일의 결과로 인한 것이며 그들이 로마병사들과 대 제사장에게 이것들을 던지기 시작하면서 폭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조금 소개해 드렸고, 이 Etrog가 메시아적 관점에서 주님의 아름다움을 상징합니다.

또 lulav는 시편 92:12절에서 보면 종려나무의 다른 이름이며. 의인은 종려나무 처럼 번성할 것이라고 말하고 의, 그의 의, 구원의 능력에 대하여 말합니다.  

화석류 가지는 찬양과 기쁨을 상징하고,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버드나무는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그의 겸손함을 나타냅니다.
여기에서 그 관점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어떻든 이것들은 네 종류의 식물, 그리고 그것에 따르는 복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이 했던 것처럼 여러분이 할 일은 오른 손에 lulav를 잡고 etrog를 잡았다가 내려놓은 다음, 다른 방향으로 잠시 돌린 후 함께 놓습니다.
처음에는 그것들을 따로 들었습니다.  
여기에 있는 두 가지의 축복으로 그들이 한 것과 같이 저도 요제를 드리려고 합니다.
축복은 ’Baruch atah Adonai, Eloheinu melech ha-olam, asher kidshanu b’mitzvotav, v’tzivanu al n’tilat lulav‘이며 번역하면 ’만유의 우리 주 하나님 복받으소서, 그의 말씀으로 우리를 성결케 하시고 우리에게 종려나무를 들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였을까요. 동쪽으로 돌고 축복의 말을 선포한 후 그것을 돌린 후 같이 잡고 세 번 흔든 후에 동쪽을 향하게 합니다. 그 다음에 그들은 다음 방향으로 가고, 다음 방향으로 그리고 위, 아래로 흔듭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동서남북 그리고 하늘의 위와 아래 전체 우주의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하며 예루살렘과 주위 모든 각처에서 기뻐했습니다.
여기 다른 것들이 있는데, 이 절기 행사 중에 일어나는 몇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있습니다.

초막절은 초막이 세워지기 시작하는 때입니다. 주님께서 언제 그의 천년간 통치를 하실까 보는 날이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에 일어나는 다른 중요한 핵심 사건이 있나 볼까요.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들이 보셨지요. 작은 헤롯 성전의 모델이 되었던 솔로몬의 성전입니다. 헤롯 성전 1000년 전입니다.
그것은 역대하 5장을 보면 어떻게 봉헌되었는지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이 7째달의 절기에 왕 앞에 모이고, 말하기를 제사장들이 반열대로 하지 아니하고 스스로 정결하게 하고 성소에 있다가 나오매, 노래하는 레위 사람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과 그 아들들과 형제들이 다 세마포를 입고 제단 동쪽에 서서 제금과 비파와 수금을 잡고 또 나팔 부는 제사장 120명이 함께 있다가, 일제히 나팔 불고 찬송하며......  사도행전에서 그들이 한 장소에서 하나가 되어 찬양하고 경배하였던 것 기억하시지요.

나팔 부는 자와 노래하는 자들이 일제히 소리를 내어 여호와를 찬송하며 감사하는데 나팔 불고 제금치고 모든 악기를 울리며 소리를 높여 여호와를 찬송하며 이르되 선하시도다, 그의 자비하심이 영원히 있도다 하매, 그 때에 여호와의 전에 구름이 가득한지라. 제사장들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대하5:13,14)  
이때가 초막 절기였고 봉헌 시에 성령이 솔로몬의 성전에 내려왔습니다.

역대하 7장을 보면 솔로몬이 기도를 마친 후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제물들을 다 사른 후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도다. 여호와의 영광이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여호와의 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여덟째 날에 무리가 한 성회를 열고 제단의 낙성식을 7일 동안 행한 후 이 절기를 칠일 동안 지키니라.   다 초막절에 일어난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역시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말한 것 처럼 성전에서의 축하 행사에 2백만의 사람들이 왔을 것입니다.
봄의 절기에 대해 말할 때 요셉푸스가 기록한 바에 따르면 25만 마리의 어린 양이 유월절 하루에 죽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성전 마당에 온 순례자들은 무엇을 하였지요?
절기 중에 기뻐하였습니다.
그들의 기쁨의 초점은 제단에 물을 붓는 典祭의식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이어진 이 전제 의식(water liberation ceremony), 이 의식은 무엇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지요? 큰 기쁨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뻐하라고 명령을 받았고 그렇게 잔치를 벌였습니다.
직접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여자들의 마당에서, 여기에 머리 부분을 각 4개의 황금 핀으로 고정시킨 높이 세운 촛대를 볼 수 있읍니다.  각 머리 부분에 황금 고정 핀이 4개있었구요.  
양초 심지는 제사장들이 전례로 입는 세마포를 조각을 잘라 만들어 썼읍니다.
그것을 7갤론의 기름통에 담궈서 썼구요.

여기 위로 올라가는 작은 사다리가 있습니다.
4명의 젊은 견습 제사장들이 가득 채운 기름통을 들고 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한번 켜진 빛은 성전 마당의 예식으로 인하여 나오는 밝은 빛 때문에 항상 밝았습니다. 그 당시에 전기가 없었을 것은 당연합니다.  
예루살렘은 매우 높은 곳에 있어서 여기 산 위에 오르는 길이 있습니다.
높은 곳에 높이 세운 등이 타고 있으면 먼 40 마일 밖의 지중해에 있을 지라도 이 빛들을 밤에 보였을 겁니다.  
초막절 기간에 예루살렘은 세상의 빛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초막절에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요한복음 8장을 보면,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때가 초막절 기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상의 빛을 조금 더 연구해 봅시다.
헤롯의 성전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자들의 마당에서 Nicanor의 문까지 이르는 15개의 계단이 있고 그 곳을 거쳐 모든 짐승을 잡았던 이스라엘의 마당으로 이릅니다.
이 15계단은 다윗 왕이 성전의 기초를 팔 때 시편에서 성전으로 올라가는 15장에 일치되게 15개의 단계를 의도적으로 만든 것입니다.  
시편은 그들의 찬송가였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찬양은 시편 120편부터 134편까지입니다.
다윗 성은 낮은 남쪽 언덕 위에 세워졌기 때문에 말 그대로 성전을 향해 올라가야 했고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동안 찬양하고 이 시편 구절을 외우면서 올라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할렐(Hallel)이라는 것이고 여기서 할렐루야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게 바로 시편 113편과 118절이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절기 동안 부르던 할렐입니다.  

이 장들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기쁨, 그리고 원수로 부터의 구원에 대한 감사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들이 다윗왕에 의해 한 시편으로 집대성되었고 그것들이 유대이즘에 대한 다음 기본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할렐 하나 속에 다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것을 주목해 봅시다. 출애굽 - 매우 중요한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율법, 죽은 자의 미래의 부활,  메시야의 재림 등 중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시편 113편에서 118편까지가 메시야의 재림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절기에 시편 118을 부르고는 했습니다.
사람들이 노래를 할 때 남자들은 그들 앞에서 횃불을 흔들며 춤을 추었습니다.

여자들의 마당에서 이스라엘의 성전 뜰까지 올라가는 15계단에 선 레위인들은 수금과 나팔, 그리고 다른 악기들을 불었으며 많은 무리가 있었고, 굉장한 시간이었겠지요.   그 곳에 제사장 2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은 나팔을 불며 뜰의 큰 문으로 가는 출입구 양쪽 계단 꼭대기에 서 있었습니다.
전제의 명령에 따라 행한 것이고 이것은 미쉬나(Mishnah)에 근거를 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들이 전제의 큰 기쁨에 참여하고 일부는 직접, 다른 사람들은 서서 구경했습니다.  
높여진 난간은 공회의 남자들이 춤추는 것을 보려는 여자들을 감당할 수 있게 특별히 만들어졌습니다. 큰 황금 그릇들이 있었고 제사장들은 노래하고 사람들은 춤추고 즐거워합니다.

너무 기쁘고 시끄럽고 해서 한 랍비는 전제 의식 기간에 잠들기가 어려웠다고 까지 말합니다. 하루 첫 시간에 매일의 희생제물을 드리고 기도에 참석한 후에 추가 제물을 드리고 다음 식사하고 나면 바로 오후 예배에 참석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음에 전제의 명절이 따르고 밤새도록 계속되며 다시 시작됩니다.  

얼마나 즐거운 시간이었는지 이제는 감이 잡히시지요.

제사장들은 3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다윗은 제사직을 8명의 제사장씩 3팀으로 나눴습니다.

한 그룹은 이 지역의 뒤를 맡았고, 그곳에 있는 큰 경사로 제단을 볼 수 있는데, 여기에 Nicanor 문이 있고 그곳을 통하여 여자들의 뜰로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희생 제물을 잡고 번제단에 바쳐서 성소로 들어가고 지성소는 여기 뒤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열방의 절기에 대해 전에 말한 것을 기억하신다면 70마리의 황소가 여기 있었을 입니다.  매일 해야 할 제사용 제물도 있었겠구요.  다른 제물, 감사제물, 화목 제물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에 절기 행사를 돕는 수천의 제사장들이 있었을 겁니다.  
이번에는 두 번째 그룹입니다.
그들은 대 제사장의 인도를 받아 생명의 물이 있는 실로암 못으로 갔을 것입니다.
실로암 못에서 뜬 물 한통이 이 문을 거쳐 성전 안으로 들여져 초막절 동안에 이 제단 위에서 전제에 사용되었고요. 성전이 서있는 실로암 못 까지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그 길을 남쪽의 물의 문 밖으로 나가 실로암 못으로 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읍니다.
이것을 보려고 250만의 사람들이 모였었습니다.

수십만의 순례자들이 있고 모두가 생명수를 얻기 위해 내려 오고 있는 제사장들의 긴 행렬을 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도우미들은 술로 가득한 은 주전자들을 들고 있었습니다.
새벽에 그 무리들이 예루살렘 벽 발치에 있는 실로암 샘물까지 화음을 넣어 찬송하며 행진하였습니다. 실로암 못의 의미는 부드럽게 흐르는 물 입니다.  
다음으로 전제에 사용되었던 작고 좋은 황금 물통을 봅시다.
초막절 축제 동안 전제에 사용되었던 황금 물통과 은잔이 있습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참석한 군중들과 함께 새벽에 실로암 못으로 줄지어 이동하고 물을 연못에서 떠서 황금 물통에 담아 성전으로 옮겨지고 은잔에 담아 제단 위에 올려 둡니다.  놋쇠로 만든 제단에 은잔이 있습니다.  생명수를 안에 붓습니다.
거기서 대제사장은 황금 물병을 들고 살아있는 물 또는 히브리어로 Mayim-Hayim이라고 알려진 물을  퍼서 항아리에 넣고 그의 도우미들은 술이 들은 은병을 잡습니다.

성경에서 은은 대속을 의미합니다. 그 안에 피를 상징하는 포도주를 담습니다.  
대제사장이 여기서 특별한 황금 물병을 집어 그것을 생명수로 채웁니다.
다음에 회중은 충성을 표시하는 황금 그릇을 든 대제사장의 인도로 성전으로 다시 올라갑니다.  성전에 도착하면 대제사장은 물병을 제단에 올리고 나서 그 물로 구석에 있는 은잔을 채우고 다른 제사장은 술을 붓습니다.
제단에 채워지는 술과 물과 피를 보십니까?
예수님은 물과 피를 흘리셨지요. 희생제단의 바로 오른쪽 여기에 제물로 부터 쏟아지는 물과 피가 있습니다.

다른 제사장은 술병의 술을 반대쪽의 잔에 붓고 이 의식은 다음 해의 땅의 풍요와 수확을 결정짓는 降水에 대한 열망과 염원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오직 비가 있어야 했습니다. 여름의 가뭄이 끝나고 추수를 마친 후 다음 해 봄에 풍성한 수확을 얻기 위하여 겨울 비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출애굽을 말한 할렐에 있는 것 기억하시지요?
출애굽기 15:1,2절에 모세와 이스라엘의 소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말하기를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도다‘  주님은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 되신다.(2절)

구원에 대한 히브리 말은 예수아입니다.
마리아는 영어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라고 부르지 않고 구원을 의미하는 예수아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며 나는 그를 위해 거주지, 숙카, 초막, 거주할 곳을 준비하신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시라, 내가 그를 높이리라.

시편 118:14절을 보세요.

츌애굽을 말하기 때문에 그들이 찬양하던 것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힘이시오.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그들은 그 개념을 바로 여기서 얻었습니다.
기쁨의 소리가 있지요. 왜 초막절에 그 찬양을 했는지 아시겠지요?
그들은 기뻐하라는 명령을 받았었습니다.  

구원은 의인의 장막에 있습니다.

초막절의 구원과 기쁨을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구원과 기쁨과 의인의 장막 모두가 관련되어 있읍니다.

그것은 출애굽만 아니라 초막절에 대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초막절에 다시 오실 구원자를 말하기도 하는 것이구요

절기의 마지막 날인 7일째에, 이사야 12:2,3절을 보면 그들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보라, 그는 나의 구원이시라. 그를 신뢰하고 두려워 하지 않으리니 여호와 나의 주는 나의 능력이시고, 나의 노래며 나의 구원이 되시도다. ‘예수아(구원)의 우물들에서 기쁨으로 물을 길으리로다.

요한복음 7장의 유대인들의 무슨 절기일까요.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그들이 기쁨으로 찬양을 하였고, 그래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주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치리로다’ 라고 말씀하신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그들은 ‘예수아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라는 그 말을 기쁨으로 받았습니다. 예수아는 일어나서 나를 믿는 자에게는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고 말합니다.  
좀 더 읽으면 예수님이 소리 질러 외친 것 같이 초막절에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아실 것입니다.
한 그룹은 희생 제물을 잡고, 다른 그룹은 실로암 못에 갔다 돌아오고, 세번째 그룹은 무엇을 할까요?

세 번째 그룹은 美門이라 불리는 동쪽 문을 통해 Motzah 계곡으로 내려가 길이 25-30 피트 정도의 크고 긴 버드나무 가지를 꺾습니다.

행진하는 것처럼 제사장들은 행렬을 지어 이동합니다.
다른 사람을 다치지 않도록 서로 30피트 이상 떨어져서 가지들을 흔듭니다.  
행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열, 그들은 완전한 일체를 이루며 또 30피트 크기의 큰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걸으며 흔들고 가지고 올라오고, 걷고 흔들고 가지고 올라오고

수천의 버드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 상상해 보세요.

히브리어로 바람은. 루아흐(ruach)라고 하고 영으로 번역되기도 하지요.
그들이 하나가 되어 행진하기 때문에 한쪽에서는 생명의 물을 갖고 성전으로 올라오고 대제사장은 생명수를 가지고 성전에 올라갑니다.  
다른 제사장들은 영을 가지고 성전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에 물을 가진 그룹과 바람을 가진 그룹이 성전으로 되돌아오고 있었을 겁니다.  예루살렘에 임하는 성령을 상징합니다.
그들이 문에 도착하면 flute를 부는 제사장이 대기하고 있다가 악기를 붑니다.
제사장이 바람과 물을 성전 안으로 들여오도록 합니다.

레위기에서 초막절은 며칠간이었지요
레위기 23장에서 7일간 번제를 드리고 8일째에는 성회로 모이는데 성회는 무엇인가요?
mikraw 드레스 리허설, 최종 연습, 한 큰 회중 모임입니다.
회중 모임이지만 뭔가를 준비하는 마지막 연습입니다.

그 다음에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합니다.

엄숙한 모임이며 그 때는 다른 수고의 노동을 하지 않습니다.  

8일째는 Shemini Atzeret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단어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Shemini는 자료를 보면 숫자 8을 의미하고 8일째 날이라는 말입니다. Atzeret 은 모임을 의미하고요. 그래서 Shemini Atzeret 는 문자 그대로 8일째 모임을 의미하거나 8일을 의미합니다.
완전을 의미하는 7은 한 단위를 끝내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매주는 7일째의 안식일로 끝납니다. 그것은 안식일(Shabbath)의 7 (Shevat)에서 나온 것으로 8일째는 새로운 첫날이 됩니다.

도 레 미 파 솔 라 시를 생각해 보면 시가 끝나고 다시 도로 돌아가지요.  
모든 것은 7의 단위로 표시된다는 말입니다.
8은 8일째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주간의 의미로는 새날이 된다는 말이라고요.
새 출발을 말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전에 하나님의 7천년 계획에 대해서 말했었지요.  
8일째,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새 출발.
베드로후서 3:12을 봅시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공의가 존재하는 새 하늘과 새 하늘을 고대합니다.
그것은 Simchat Torah로 알려져 있습니다.
8일째 날, Shemini Atzeret 는 Simchat Torah로 알고 있고 기쁨,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므로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요?

신명기 31장은 뭐라고 그러는지 봅시다.  

모세는 사람들에게 매 7년의 끝에 말하라고 합니다.
초막절은 7일이고 7번째 달에 있는 것을 기억합시다.
매 7년의 끝에 곧 무슨 명절의 면제년의 엄숙함 중에?
초막절입니다.  그것도 역시 초막절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초막절에는 이스라엘의 20세 이상된 남자들이 나와야하지만 7년째 초막절에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와서 Torah 를 읽으라고 말합니다.  

법이라는 단어는 사실 맞지 않고요. 히브리어 Torah, 바른 번역은 가르침입니다. 문자 그대로 가르치는 것을 말하지요.  
다른 말로는 ‘이스라엘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 가르침을 읽어 들려줘라’입니다.
‘너의 성안에 있는 모든 남녀, 아이들, 이방인들을 불러모아 듣고 배우게 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 Torah의 가르침을 행하게 하라‘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2장과 스가랴 14장의 주님께서 다시 오실 초막절 마지막 날에 대한 예언을 봅시다. 나는 이것이 희년(Jubilee)의 해에 일어날 것을 믿습니다. 7x7은 49입니다.

49번째 해 끝에 회복될 것이며 하나님은 새로운 희년을 시작하시고, 무엇을 하시려는 거지요?    
그 때 마지막 날에는 하나님의 집이 산위에 세워질 것이며, 모든 산과 열방 위에 높아질 것입니다.

초막절과 열방의 날 기억하세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주의 성산과 주의 집에 올라가자고 말할 것입니다.
구원자가 와서 그의 길을 가르칠 것이고 우리는 그의 길로 행할 것인데, 예루살렘 또는 시온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돌아오시면 창세기,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신명기를 그의 관점에서 새롭게 가르치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잘못 사용되고 적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열방 사이에서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들을 책망하시리니, 그들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나라들이 칼을 들고 치러 일어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 야곱의 집이여,그의 빛에 행하자.(사2:3-5)   초막절은 하나님의 빛입니다.

미가도 똑같은 것을 말했는데, 마지막 날에 여호와의 집이 산위에 설 것이며 그는 모든 산 위에 높임 받으시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사람들이 몰려오며 열방이 와서 ‘우리가 야곱의 하나님의 집으로 여호와의 산으로 올라가’ 라고 말합니다.(미4)
그가 우리에게 그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고 우리가 그의 길로 행하리니, Torah가 시온에서 나오고 그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 나올 것이라.  우리는 구원자의 발치에 앉을 것입니다.
그가 초막절에 돌아오시면 우리의 모든 성도들이 함께 모여 그의 발치에 앉으면 그가 우리에게 그의 길을 가르치실 것이라.

또 느헤미야를 봅시다.
솔로몬의 성전은 대략 BC 1000년 경이고 느헤미야는 솔로몬 성전 후 약 500년 후의 사람이며 BC 587년 바벨론 포로 시 성전이 무너지고 70년 동안 바벨론에 잡혀 갔다가 BC 500년 경에 다시 돌아와 성전을 건축하려고 합니다.
70년 후 그들 대다수는 Torah 서판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것을 가질만한 부자도 아니었습니다.
여기 느헤미야 8장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마치 하나 처럼 모였습니다.

어느 문 앞에 있는 거리로 들어가지요? 물의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이 학사 에스라에게 주님이 명령하신 모세의 율법책을 가져오라고 말합니다. 제사장 에스라가 율법을 가지고 와서, 모두 7번째 달 첫 번째 날에 남자와 여자 모든 회중들에게 들려 주었으며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이해되시지요.  
7번째 달 첫날,  나팔절에 무엇이 일어났지요?
나팔절이 그 달의 첫째 날이었습니다.

이 욤키푸르(속죄일)의 달, 7번째 달 10일째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초막절 7번째 달 15일째 날은 무엇일까요?
모두가 7번째 달 안에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9월이 없고 10월은  Tishrei 달 1 일입니다.

Tishrei 1는 나팔절이고, Tishrei 10은 속죄일이며 Tishrei 15일은 초막절입니다.
그 모든 것이 레위기 23장에 나와 있는 내용입니다.  
참고로  www.thegalileeexperience.com에 들어가 보시면 더 자세히 알게 되십니다.
본문(느8장)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는 물의 문 앞에 있는 길거리에서 아침부터 한낮까지 남자와 여자, 모든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 앞에서 읽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다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들려지는 하나님의 율법을 또렷하게 듣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나팔절이 며칠이나 되지요?   2일이죠. 그러나 긴 하루로 알려져 있습니다.
몇날, 몇시에 시작되는지 몰랐던 절기입니다.

둘째날, 나팔절의 두 번째 날에. 뭇 백성의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율법의 말씀을 밝히 알고자 하여 학사  에스라 앞에 모입니다.(13절).  

그들은 주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명하신 율법이 기록된 것을 보고,  이스라엘의 회중들에게 7째 달의 절기에 초막에 거하라고 합니다.  
그들은 포로 70년 동안 행하지 않았고 율법책이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했었습니다.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은 그들이 예루살렘의 모든 도시에서, 산에 올라가 감람나무가지와 들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 나무, 종려나무, 무화과 나무 가지로 초막을 만들라고 말하고 공포합니다.
그들은 기록한대로 그것을 이용하여 초막을 지었습니다.  

에스라는 첫날부터 끝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백성들은 7일 동안 절기를 지키고 8일째는 규례를 따라 성회를 열었습니다.  

유대교에 8일째 날에 하는 행사가 무엇이 있지요.  할례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지요.
그 분의 말씀하신 것은 다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55장을 보시면 나의 말이 그것을 이루기까지 헛되이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7일간의 절기에 무엇인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절기가 어떻다고요. 7일간이라고 합니다. 8일째가 있다고 하고, 할례는 8일째에 행합니다.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영이 이 땅을 덮을 때 - 메시아의 때에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알려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초막을 주신 것입니다.  
Shemini Atzeret 과 Simchat Torah 는 Torah에서 기쁨의 날이 되어야 했습니다.  
무교절의 7일간이 Torah룰 주는 면에서 오순절의 하루 절기와 연관이 있습니다.  
율법을 기뻐하는 하루의 축제와 관련지어 초막절 7일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즐거워해야 했습니다.

신명기 33장은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오시고 세일에서 그들에게 일어나신다고 하지요.
그는 바란산에서 빛을 비추시고 일만 성도와 함께 오시고, 그의 오른 손에서 그들을 위한 무서운 율법이 나오고.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그들은 당신의 발치에 앉았다. 모든 사람이 당신의 말씀을 받는도다  
작은 새 처럼, 작은 어린 아이들 처럼 우리가 그의 발치에 앉고 그는 우리를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우리에게 율법을 명하니, 야곱의 회중의 기업이로다‘ 라고 말합니다.

Torah라는 말은 스트롱의 성경 사전 33:84 Yarah에서 나온 말로 물처럼 흐르고, 가르치기 위하여 손을 향한다‘는 것처럼 지적한다는 뜻입니다.

그들이 무엇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까.  비

비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내립니다.  
그 모두가 모두 하늘에서 내려 땅으로 축복과 생명을 갖다 줍니다.
똑같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 축복과 생명을 줍니다. Torah가 왜 물에 비교되는지 알겠지요.

초막절 기간 동안 그들은 비를 위해 기도하였지요

초막절 기간은 율법의 말씀을 나누는 때입니다.  

에스겔 34:26절에, ‘내가 그것들을 만들고 내 산 사방 장소가 복이 되며 때를 따라 비를 내리리라. 축복의 비입니다.   단순한 물이 아니고 축복입니다.
그는 비를 축복과 똑같이 보고 있습니다.
시편 72편을 봅니다.  그가 비처럼 내리리라.(6절)
땅을 적시는 비 같이 베어진 풀 위에 내리는 비 같으리라. 그의 날에 의인이 흥왕하고, 평강의 풍성함이 달이 다할 때 까지 이르리라.(7절)
그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리라.(8절)
바로 구세주의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비처럼 내릴 것이며 초막 절기에 보게 될 것입니다.  
하박국 2:14절에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고 말합니다. 땅에 가득한 많은 물입니다.  
호세아 6:3절도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무엇과 같이 우리에게 비처럼 임하시리라.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이른 비처럼 임하시리라.

요엘2: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할지어다.
그의 공의에 따라 너희에게 이른 비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주시되 그의 첫달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리라.

여기에 메시아가 있고 율법 두루마리와 히브리 단어로 내리는 비를 봅니다. 예수아는 율법(Torah)입니다. 율법의 말씀인 그를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살아있는 율법이고 강림하시며 하늘에서 통치하고 있습니다.

신명기 32:2에 ‘내 교훈은 비처럼 내리고 내 말은 이슬처럼 맺히나니 연한 풀 위의 가는 비 같고 채소 위의 단비 같도다.
우리는 물,비를 원하지만 폭풍처럼 내리는 비가 아니라 풀과 여린 채소 위에 부드럽게 내리는 비를 원하시지요.  그렇게 오실 것입니다.
우리를 가르쳐 주시려고 부드럽고 조용히 오실 것입니다.

여기에 한 랍비가 한 말이 있습니다.

그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 것처럼 율법이 결과적으로 그의 굳은 마음을 뚫을 것으로 친근하게 느끼고 율법이 없는 유대인들은 물 없는 물고기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자주 율법은 이미 없어졌고, 한물간 낡은 것이며 새것을 가진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헛되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에 율법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솔로몬의 아가서는 성경에서 가장 잘못 해석된 책입니다.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과 같지 않지요.  그것은 절기에 관해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로 2장 10,11절을 봅시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그 여자는 한밤의 잠이 든 것이 아닙니다.
그가 말하기를 겨울이 자났는데도 여자는 깊은 잠에 들어갔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겨울 잠에 들어갔고 모든 축복과 비를 놓쳤으며, 당신은 교회에 있고 추수하러 나가기를 원하지 않으며, 여기에 머물러 나의 복만 받으려고 하지만 들판에 추수하러 나와 같이 가기를 원치 않는다.

사실, 여기가 가장 핵심이며 부드러운 사랑의 초청입니다.
그가 바람을 맞으며 밖에 서있고, 사랑하는 자여 일어나 일하러 가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자가 말하는 내 사랑하는 자는 나의 것이고 나는 그의 것이다‘라는 것을 봅시다.  

다른 말로 하면 우선 당신이 나에게 속하였고 다음으로 내가 주 당신께 속하였다는 말입니다. 여자는 내가 그에게 속한 것이 먼저고 그가 나에게 속하였다고 말하지 않고, 주 당신이 나에게 먼저 속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나의 가까이에 있고, 그를 필요로 할 때, 그를 만날 수 있고 그런 후에 내가 그의 것이다.

남자는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고 있고 여자가 남자에게 말하는 것을 보면 그 다음에 여자가 나자에게 말하는,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나의 사랑하는 자여 돌아와 베델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같아라‘ 부분을 봅시다.

여기 베델(Bether)은 히브리어로 분리를 말하고, 폭포와 같습니다.

여자는 내가 부를 때 당신은 왜 돌아와 폭포의 다른 곳으로 건너와 놀지 않느냐고 말합니다.

남자는 당신은 추수하러 나가야 하고 내가 필요로 할 때 당신에게 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3:1절에서, 밤에 나의 침상에서 갑자기 그를 찾았으나 찾을 수가 없읍니다. 주인이 잠들기 전에 먼저 잠들고 주인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모습.

주인은 밖에서 일하고 있는데 여자는 침상에서 자려고 하며 ‘여보 어디 있어요. 왜 집에 안와요’.

여자는 ‘나의 사랑하는 자를 찾았으나 그를 찾지 못했고, 일어나야 하리라고 말합니다. - 이미 일어나야 했으나 이제야 일어나서 도시로 가야겠다고 말하지요. 어디로요. 멸망의 넓은 문으로    

‘내 영이 사랑하는 자를 찾을 것이고 과거에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고 여자가 말합니다.
여자는 그를 향한 사랑을 말하나, 실제로는 그를 위해 일하려고 하지 않고 감정만이고 내용은 없습니다.

호세아 5:6절에서도,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지라도 만나지 못한다고 말하지요.  이미 그들에게서 떠나셨음이라

뭐가 일어난 것인가요? 자주 그런 교회를 볼 수 있지요.

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에도,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그는 불신자의 문을 두드리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밖에 계시는 것도 모릅니다.
그들은 주님께 ‘우리를 두고 떠나소서, 우리는 교회 안에 있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누구 있어요‘ 하며 밖에서 문을 두드리고 있고요. ’이리로 나오라‘.

예레미야 7:1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제 너희가 그 모든 일을 행하였으며 내가 너희에게 말하되 새벽부터 부지런히 말하여도 듣지 아니하였고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예레미야 29:13도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아가서 뒷부분에도 똑같이 '나는 잔다‘고 말합니다.
히브리어로 잔다는 표현은 죽음의 순간까지 깊이 잠들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밤의 짧은 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가, 나의 심장이 아직 뛰고 있다, 나의 마음이 아직 깨어있다, 마음이 뛰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그녀의 사랑하는 자가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또 히브리어로 ‘두드리다’라는 말이 ‘톡톡 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문을 쾅쾅 차듯이 심하게 두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여자를 깨우려고  CPR(심폐기능 소생술)을 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남자가 뭐라고 말하고 있지요?  일어나라고 말하는 대신에 나의 사랑하는 누이, 나의 비둘기, 나의 더럽혀 지지 않은 자여, 나에게 문을 열어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 이슬이 가득하였다.(5:2)
밖에는 비가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남자는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대신 여자가 밖으로 나와 비와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같이 추수하길 원하고 있습니다.  

이 때 여자는 ‘내가 옷을 벗었다. 발도 다 씼었고 해서,
옷을 어떻게 다시 입어요. 발을 어떻게 다시 더럽힐 수 있나요‘라고 반문합니다.

여자는 추수하러 나가길 원치 않는 겁니다. 여자는 남자에 대한 사랑과 감정을 다 가지고 있지만, 아무 것도 행하는 것은 없습니다.

남자가 문구멍으로 손을 들이미니 여자의 마음이 움직였습니다.(5:4).

그에게로 내 마음이 움직였고, 사랑하는 자에게 문 열어주려고 일어났으나, 손에 몰약을 바르려고 멈춰 시간을 지체해야 했고 손가락에서는 향기로운 몰약이 문 손잡이에 떨어진다.(5:5)  

여자는 문을 닫은 것 뿐 아니고, 아무도 들어올 수 없도록 문에 고리까지 채워넣었었고, 이제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는 이미 가버렸습니다. (5:6)  
그가 말할 때 내 혼이 나갔다(5:6) -아유 내가 큰 실수했구나‘라는 말이지요.
내가 그를 찾았으나 그를 찾지 못하였다. 내가 그를 불렀으나 그의 대답이 없도다.  

여자는 밖을 바라보며 그녀의 구세주, 그녀의 왕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지 않았습니다.  침대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여자는 추수 현장에 가려고도 누가 와서 자기를 부르고 귀찮게 하는 것도 원치 않았습니다.  

잠언의 다음 구절을 봅시다.(잠1:23- )  

나의 책망을 듣고 돌이키라 보라 내가 나의 신을 너희에게 부어주며
나의 말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내가 부를지라도 너희가 듣기 싫어하였고 내가 손을 펼지라도 돌아보는 자가 없었으며 도리어 나의 모든 교훈을 멸시하며 나의 책망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너희가 재앙을 만날 때에 내가 웃을 것이며 너희에게 두려움이 임할 때에 내가 비웃으리라.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 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 같이 임하리니 어려움과 고통이 너희에게 올 때에 너희가 나를 부르리라 그래도 내가 대답지 아니하겠고 부지런히 나를 찾으나 그래도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

여기서 말하는 최종 요지는 그가 두드릴 때에 문 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마음에 말하실 때에 빨리 응답하여야 한다는 것이죠. 아멘.  

이사야 55:6절도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라고 말합니다.
호세아 10:12절은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의를 심고 긍휼을 거두고,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너희에게 마침내 여호와께서 임하사 의를 비처럼 내리시리라’
하나님의 신부들에게 의의 비를 내리십니다.
비는 복과 의를 말하며 우리는 마음의 묵어 단단해진 밭을 깨트려야 합니다.

요한복음 7:37절을 기억한다면, 절기 마지막 큰 날, 그가 일어나서 소리 질러 외쳐 가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배 속에서,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리라.

그가 진리를 말하는 것을 듣고 사람들이 그를 참 선지자라 하더라.(40절)

바리새인들은 대답하되, 너희도 미혹되었느냐 당국자들이나 바리새인 중에 그를 믿는 이가 있느냐. 율법을 알지 못하는 이 무리는 저주를 받은 자로다(47절)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반응이었고 주님은 그들에게 대하여 뭐라고 말했습니까.

예레미야서에 나오는데, 제사장들은 주님이 어디 계시는지 말을 못했습니다.
그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그가 가신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다루는 자들이 나를 알지 못하는도다‘ 라고 예수님이 말합니다.

예레미야 2장, 여기를 보면, 너 하늘아 이 일을 인하여 놀랄지어다 심히 떨지어다 두려워할지어다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장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12,13절)

생수의 근원인 하나님을 버린 것이 죄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 7장에서 언급되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절기의 마지막 큰 날 다음, 그 다음날은 8일째 날인데 무엇이죠?

율법을 즐거워 함 Simchat Torah. 그날에 특히 그들이 율법을 즐거워 할 것이라.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즐거워 해야 했습니다.

계속해서 보면  Simchat Torah의 바로 다음 날, 간음한 여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 날이 기쁨의 날 Simchat Torah의 날이었고 그들은 율법을 남용하여 그날 간음한 여인을 죽이려고 합니다.
요한복음 8장은 뭐라고 말하는지 다음 구절을 보고 어떻게 그날이 시작되는지 봅시다.  
예수님이 감람산에 올라가시고 아침 일찍 성전에 올라가시자 사람들이 그에게로 몰려오고 그는 앉아서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앉아서 읽는 것이 신명기의 내용과 똑같지 않습니까. 그날 그의 발치에 앉았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말씀을 성취하고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간음 중에 잡힌 여자들 데리고 와서 중간에 앉히고,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신명기 19장에 있는 구절은 ‘위증하는 자가 오면, 그가 행하려고 꾀한 그대로 그에게 행하라’고 말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위증하는 자가 있으면 돌에 맞아 죽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레위기 20:10절의 율법은 간음하는 자와 음부를 같이 죽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현장에서 잡혔다면 姦夫는 왜 현장에 없습니까?
그들이 율법의 계명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필요하면 율법을 남용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들과 다른 책들에 큰 공회, 빌라도의 때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공회 회원들이 앉는 방이 성전 앞에 있었고 장로들이 항상 문 앞에 앉아있었으며 그들은 살인에 관한 중요 사건들만 취급할 수 있었습니다만 제사장들이 악하여 대부분은 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못했습니다.
재판정은 사람들을 해산시키거나 그 사건을 맡지 않는 것이 낫다고 결정했을 것입니다. 제사장들에게 엄하게 적용시키지 못하면 누구에게도 적용하지 못할 것이고 차라리 못 본척 하는 것이 낫지요.
그래서 사형선고는 허용되지 않았고 그것이, 유대인들이 헤롯에게 그들이 나가버렸으니 우리 법으로는 사람들을 죽일 수 없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간음한 여자에게 돌 던지는 부분을 읽을 때에, 그 배경을 짐작하게 하는 스테반의 돌 맞아 죽은 사건은 인민 재판이었고 그리스도  당시의 총체적인 무질서였지요.  

법과 질서가 없었습니다.  그 내용이 그것입니다.  

요한복음 8장을 봅시다.
그들이 고소할 틈을 찾으려고 그를 시험하였지만, 예수님은 웅크리고 앉아 마치 그들의 말을 듣지 않는 것 처럼 땅 바닥에 손가락으로 쓰고 있었고, 그래서 그들이 계속 물었을 때, 그는 일어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고 땅에 씁니다.

9절을 보면 그들이 말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다 나갔다고 합니다. 그들 모두가 부끄러웠겠지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을 거절하기 전 바로 그 날을 기억하십니까?  

예레미야의 말을 보면, ‘오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될 것이라. 이는 그들이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렸음이로다’.(17:13)  

이것이 부정할 수 없는 다른 구절 중 하나가 아닐까요?  

계속해서 또 뭐라고 말합니까?  ‘나를 고치소서,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17:14).

이 구절을 정확히 적용하면, 예수님이 성경의 말씀을 계속, 계속해서 이뤄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워 주를 떠나는 자는 수치를 당할 것이지요.

호세아 8:8절부터 12절까지도 ‘이스라엘은 삼킨 바 되었으니, 이제 그들은 이방인들 가운데서 기쁨이 없는 그릇같이 되리라’. 저희가 홀로 처한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연애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저희가 열방들 사이에 고용되었을 지라도 이제 내가 저희를 모으리니 저희가 모든 방백의 임금의 지워준 짐을 인하여 슬퍼할 것이라. 에브라임이 죄의 제단을 많이 만들었더니, 제단이 그를 범죄하게 하도다. 내가 그를 위하여 내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도록 기록하였으나 그들은 이상한 것으로 여기도다.

우리는 율법을 멀리 있는 것으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호세아 4:6는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여 멸망한다’ 고 말합니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므로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율법을 잊었음이니라. 이 지식은 구원의 율법의 말씀을 잊은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멸망하는 것이지요.  

레위기 23장도 다시 말합니다. ‘7일 동안 초막에 거하라’.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모두 초막에 거할지니, 내가 이스라엘의 자녀들을 초막에 거하게 한 것을 알게 하라    

도시 언덕에 점처럼 수천의 초막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250만의 사람들이 초막을 세워야 했으니까요.  

요한복음 1:14절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여기에도 초막에 관한 것이 나옵니다.  ‘말씀이 거하다’ 는 하나님께서 구약의 언약궤 속에 계셨던 것 처럼 장막 또는 막사를 지었다는 말입니다.

초막절에 그들이 초막을 짓기 시작했지요.
그들이 구약의 언약궤 속에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려고 하셨습니다.
잠깐 누가 복음을 봅니다.

누가복음 1장 유대 헤롯왕 때에 사가랴라는 제사장이 있었고, 그의 아내는 아론의 자손으로, 이름은 엘리사벧 또는 엘리셰바 였습니다. 초대 제사장인 아론의 아내 이름도 엘리셰바 였습니다.

사가랴가 반열의 순서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 직무를 담당할 때 사건입니다.
그의 일은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였을까요.

성경을 보면 역대상 24장에 나오는데, 아론의 계열,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그리고 이다말 중, 나답과 아비후는 자식없이 그들의 아버지 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그래서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제사장의 직무를 감당했습니다. 24 반열이 있었고 8번째 반열은 아비야입니다.

누가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들의 규례를 따라 여호와의 집으로 가서 직무 순서에 따라 봉사합니다.

유월절은 그들 달력의 첫 번째 달인 4월에 보통 있고, 4월1일이 니산 월이라고 생각합시다. 일년에 52 주가 있습니다. 유대인의 달력으로는 51주가 있고, 우리들의 달력과는 약간 차이가 납니다.  24반열이 있으므로 일년에 2주씩 섬기면 48주가 지나갑니다. 3주가 남습니다. 모든 제사장들이 1년에 3번 예루살렘에 와서 유월절과 오순절, 초막절을 지키면, 일년을 다 채우겠지요.    

그들이 한 주를 섬기고 또 한주를 섬겼고 그 사이에 긴 공백이 있습니다. 두주가 한꺼번에 계속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래서 첫 번째 봉사의 기간이 있고 두 번째 성전 봉사 기간이 있어, 여기 니산 월 14일의 유월절이 모두 와 있었던 때입니다. 여기가 아비야 반열의 사람이 담당하던 주간입니다. 이 주간은 오순절로 모든 사람이 와서 섬기고 있습니다.
즉 사가랴는 오순절 기간 동안 성전 봉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계속되는 행사였구요.
누가복음 1:10,11절을 또 봅니다.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고 있을 때 향 피우는 시간에 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향 피우는 단의 오른쪽에 서 있었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라는 말은 희랍어로 플레토라(Plethora)라고 하는데 들어보셨나요. 뜻은 모든 송이 다발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Platos는 큰 숫자, 군중을 의미하고요.  

왜 여기에 이런 다수의 무리가 있었을까요.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
일 년에 몇 번이나 있어야 했지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이 무리들은 바로 오순절에 모였다는 증거가 되지요.

누가복음 1:23절을 보면 이 성전 봉사가 끝난 바로 그 때 일어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의 순서를 감당하고 오순절에도 섬겨야 했으므로 총 2주 동안 그 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집으로 향해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날 후에 엘리사벳이 잉태하고 5개월 동안 자기를 숨깁니다. 이 주가 오순절이고, 그와 엘리사벳이 이 곳에 갔고 아내가 임신하고 5개월 동안 자신을 숨깁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면 6번째 달이라고 나오지요. 그게 뭐지요.(26절)

12월 말, 천사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 가서
여자에게 천사가 말하기를, 성령이 너에게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권능이 너를 덮으리니 네가 잉태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아들을 낳으리라.
보라 너의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아들을 잉태하였고 본래 잉태하지 못한다고 하던 알려진 이가 잉태한지 6달이니.

마리아가 3개월을 그녀와 같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왜 3개월을 더 있었을까요.
6 더하기 3은 얼마입니까. 보통 애는 10개월만에 나오지요.
3개월 더, 1월, 2월 세례 요한이 유월절 전후에 태어났읍니다.  

누가복음 2장, 그 일이 다 끝나고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 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놓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더라.  

달력으로 다시 돌아가 생각해 봅시다.  

마리아가 하누까 Hanukah 절기 동안 임신하고, 9개월을 더해 보세요.

초막절에 주님이 태어나십니다.  그가 사람들 사이에 거주하신 것입니다.
빛이 세상에 온 것이죠.  그는 초막절에 나셨습니다.
왜 여관에 머무를 곳이 없었을까요. 그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어떻든 방이 없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구유에 두었습니다.
구유라는 말은 여물을 두는 곳을 말합니다.
가축 떼들이 초막에 있고 구유에서 여물을 먹습니다. 가축들을 구유에 둡니다.  
강보에 쌌습니다. 강보는 천 조각으로 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죠.
그것은 초막절에 쓰는 양초 심지를 만들 때 쓰는 제사장들의 의복입니다.
하나님이 태어나셨을 때 제사장의 예복으로 싸인 것입니다.  
제사장의 예복 안에 싸 놓았습니다.  

누가복음 2장, 같은 나라에 목자들이 들판에 거하며 밤마다 그들의 양떼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그들에게 나타나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에게 비출 때 그들은 두려워 하였고 천사들이 말하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들에게 큰 기쁨의 소식을 전한다.

초막절에 그들이 무엇을 하였습니까  

너희 모든 백성에게 태어나신 누구,  어느 날?.
초막절 바로 이 날에 다윗의 동네에 구세주 예수가 태어났다.

이스라엘의 겨울, 눈 풍경을 생각해 봅시다.
목자들이 한 겨울에 눈 싸인 산으로 나가려고 합니까?.
여기가 나사렛입니다. 베들레헴은 산 넘어에 있고 44마일 떨어져 있습니다.

당신이 임신 9개월의 여인이라면, 당나귀를 타고 눈이 10피트나 싸인 곳에서 산 찬 바람을 맞으며 산을 넘어 베들레헴에 가려고 할까요?
그는 한 겨울에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목자들이 한 겨울에 양떼를 먹이는 것을 볼 일이 없을 것입니다. 초막절 바로 다음에, 양떼들은 베들레헴으로 내려와 양들의 안식처로 들어갔습니다.

누가복음 2:1을 보면, 그 때 당시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세금 등록하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세무서의 관리라면 추수 3개월 후 사람들이 소득을 충분히 감출 시간을 준 후에, 세금 거두러 나가겠어요?  아니면 그들에게 돈과 수확을 가지고 한 곳으로 오라고 하여 그들에게서 정확한 세금을 받으시렵니까. 그들이 자기 하나님의 신앙으로 그 곳에 올 터이니 인구조사도 제대로 할 수 있잖아요.
초막절 휴일의 중요한 의미는 신명기 16:14절의 ‘너희는 명절에 즐거워하라‘는 성경적 명령입니다. 너와 네 아들과 네 딸과 네 남종과 네 여종과 네 성문들 안에 있는 레위인과 이방인과 아비 없는 자와 과부도 즐거워할지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깜짝 생일 파티 아시지요. 내가 세상을 놀라게 하여, 아들의 생일에 파티를 열리라, 너희는 노래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즐거워 하였던 이유입니다. 사람들에게 연습시키시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노래를 가르치고 계시고요.

여기에 여러분들이 부를 노래, 가사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들이 태어나기 천년전 아들의 생일에 부를 노래를 다윗이 작사하게 하셨습니다. 시편 118입니다.

유대인들은 시편 118편이 메시야의 오심과 관계있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 시편 구절을 노래하였고요. 그날 부르던 노래 가사를 봅시다.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나의 Yeshua(구원)이시도다. 기쁨과 구원의 소리가 의인의 장막에 있도다.  주의 오른손에 권능이 있음이여 내가 초막절에 주를 찬양하리니 그가 나의 말을 들으셨고 나의 구원이 되었음이로다. 이 날은 주의 지으신 날일세 기뻐하고 즐거워하세 라고 말합니다.(24절) 그런 다음에 그들이 성전에서 소리 질러 외치며 지금 구원하소서, 지금 구원하소서, 그것이 그들이 외치던 것입니다.

눅2: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였다’고 말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오 하나님 당신은 우리에게 너무 크도소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그들을 보면 ‘그들이 먼 외부의 우주에서 세상을 내려다보고 세상으로부터 나오는 빛을 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사람들이 예배하고 찬양하고 있는 것을 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21절에서는 뭐라고 말할까요?

할례 할 8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아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초막절 8일째에 그는 아브라함에게 한 언약을 확정하기 위해 성전에서 피를 흘립니다. 그것은 초막절에만 일어나는 일입니다.

누가복음 2:22절로부터 24절로 마치려고 하는데  모세의 율법을 따라 정결 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하나님의 법대로 그를 하나님께 바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첫 태에 태어난 자 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그리고 주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산 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 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라.

정확한 말이 아닙니다.
산 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 비둘기 둘을 가지고 왔다고 말하지요.?

레위기 12장에서는 ‘자녀간 정결케 되는 기한이 차거든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년 된 어린 양을 취하고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취하여 회막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어린 양을 감당할 능력이 안되도록 가난하면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둘기 새끼 둘을 가지고 올 수 있는데, 그것을 보아 그들은 부자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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