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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버의 ‘하시디즘’과 ‘만남’
arm  2011-10-02 20:4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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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버의 ‘하시디즘’과 ‘만남’

부버의 생애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1878년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부버가 세 살 때 이혼을 하게 되어 어린 부버는 조부모 댁에서 살게 되었다. 그의 조부모는 박식한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부버는 조부모를 통해 풍부한 정신적 기반을 닦게 되었으며, 이것이 훗날 그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소년 시절의 부버는 아버지와 함께 하시디즘(Hasidism, 유대교의 경건주의적 신비운동)이라는 종교적 공동체의 안식일 행사에 참여하곤 했는데, 그 공동체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신적 힘에 매료되었다. 그가 하시디즘을 최초로 체험한 시기가 바로 이때였다. 그러나 중등학교 무렵부터 그는 다양한 지식을 섭렵하면서 하시디즘뿐만 아니라 유대교 전체를 멀리하게 되었다.

대학 시절 부버에게 영향을 미친 두 스승은 베를린 대학의 지멜(Simmel)과 딜타이(Dilthey)였다. 즉 지멜은 부버로 하여금 신앙의 유형을 구별하게 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딜타이는 부버의 연구방법론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한마디로 부버의 대학 시절은 사상의 편력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20대 초반인 1900년에 부버는 시오니즘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시오니즘의 정치적 성향에 환멸을 느낀 그는 곧 결별을 하고, 정치적 차원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새로운 방향을 탐색하였다. 바로 이것이 그로 하여금 유대교를 상기시키면서 하시디즘을 재발견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은둔상태에서 5년간 하시디즘에 대한 집중적 연구를 한 후, 그는 유럽식 지성으로부터 벗어나 유대사상가로 변신하게 되었다. 하나님을 즐거운 마음으로 경배하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것, 바로 이것이 부버가 이해한 하시디즘의 정신이었다.

1923년에 프랑크푸르트 대학의 교수가 되어 유대교와 종교사에 관련된 강의를 하였으며, 같은 해에 그의 대표적 저서인 『나와 너』(Ich und Du)를 출간하였다. 1925년에는 신학자 로젠쯔바이크와 함께 마르틴 루터의 번역 이래로 가장 훌륭하다고 평판받는 성경번역에 착수하였다.

나치의 박해에 대해 정신적 저항을 하던 그는 결국 1938년에 60세의 나이로 이스라엘로 돌아와 헤브라이대학의 사회철학 담당교수가 되었다. 은퇴 이후에도 성인교육기구에서 자신의 교육이론을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던 부버는 1965년 87세의 나이로 타계하여 예루살렘의 한 묘역에 안장되었다.


모든 것 신성화 주장

부버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두 기둥은 ‘하시디즘’과 ‘만남’이다.

그런데 ‘만남’의 철학은 하시디즘을 발판으로 생성된 것이기 때문에 ‘하시디즘을 모르고는 부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시디즘은 18세기에 엘리에저(Israel ben Eliezer)에 의해 동유럽의 폴란드에서 생겨난 유대교의 경건주의적 신비운동이다. 하시디즘이라는 용어는 헤브라이 어의 하시드(hasid;복수형은 hasidim)에서 나온 말이며, 하시드란 ‘경건한 자(pious man)’를 의미한다.

하시디즘의 근본이념은 모든 사물 및 피조물들을 신성한 것으로 보며, 그 가르침은 ‘하나님의 세계를 사랑하는 것’에 있다. 따라서 하시디즘은 세계 속에서의 적극적인 봉사를 요구하며, 종교의 외면적 형식보다는 일상생활에의 충실, 관심, 사랑을 강조한다. “인간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다. 그리고 삶의 의미는 적극적인 봉사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하시디즘이 인간에게 가르치는 바는 1)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2)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귀기울여야 하고, 3)결단을 해야 하고, 4)흐트러진 자기 자신을 추슬러야 하고, 5)하나님의 전체성의 이미지에 따라 전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다. 동시에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세계의 신성화를 위해 책임을 져야 한다.

부버가 하시디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한 바는, 인간이 일상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실현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며 바로 이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그것은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신성화하는 것이다.

인간의 구원은 자기 자신을 세속적인 것으로부터 멀리 격리시켜 놓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신성화하는 데에 있다. 즉 자신의 활동, 음식, 가정 및 사회의 구조 등을 신성화하는 데에 있다. 이같은 견해를 부버는 ‘하나님의 신성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의 사다리 계단은 언제, 어디에서라도 발견할 수 있다’라고 함축적으로 표현한다. 말하자면 모든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깊이 간직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시디즘은 위대한 민중공동체의 사회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은둔자들의 모임이라거나 선택된 자들의 조합이 아니라 누구나 참여하는 민중공동체이다. 여기에서는 믿음과 활동 간에, 진리와 검증 간에, 도덕과 정치 간에 어떠한 분리도 있을 수 없다. 즉 모든 것이 하나의 왕국이며, 하나의 영혼이며, 하나의 현실일 뿐이다.


관계 개념으로 인간 본질 파악

이상에서 간략히 살펴본 하시디즘을 모태로 한 부버의 철학이 ‘만남’의 철학이다.

부버에 의하면 인간이 세계에 대하여 가질 수 있는 두 가지의 주요한 태도(혹은 관계)는 ‘나-그것’의 관계로 표현되는 사물세계와 ‘나-너’의 관계로 표현되는 인격적 만남의 세계이다. 따라서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인간 삶의 양상도 달라진다.

‘나-그것’의 세계는 경험과 인식과 이용의 대상이 되는 세계이다. 사람이 세계를 경험한다고 말할 때, 그것은 사람이 세계를 객체로서 소유하고 이용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때의 세계는 경험의 대상으로서의 ‘어떤 것’일 뿐, 경험하는 주체와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관계에 있지 않다. 이처럼 방관자, 관찰자, 조정자로서 세계와 관계하는 자는 ‘나-그것’의 ‘나’이다.

그러나 ‘나-너’의 세계는 경험의 대상이 아니다. 여기서의 ‘너’는 뭇 성질로 분해할 수 없는 전존재이다. 따라서 사람은 ‘나-너’의 관계에서 서로 전존재를 기울여 참인격으로 관계한다. 이러한 관계는 직접적이며 상호적이요 근원적이다. 이러한 ‘나-너’의 관계에 들어서는 것이 곧 ‘나’와 ‘너’의 ‘만남’이다. 이처럼 세계와 상호 관계하는 자는 ‘나-너’의 ‘나’이다.

그러므로 ‘나-그것’관계에서의 ‘나’와, ‘나-너’관계에서의 ‘나’는 서로 다르다. ‘나-그것’의 ‘나’는 개적 존재(individuality)로서 나타나고 자기를 경험과 이용의 주체로서 의식하는 반면에, ‘나-너’의 ‘나’는 인격으로 나타나고 자기를 종속적인 속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주체성으로 의식한다.

우리는 ‘나’와 ‘너’의 참된 ‘만남’ 속에서 궁극적 실재와 삶의 의미를 알게 된다. 우리에 의해 측정되고, 판단되고, 이용되는 것은 모두 ‘그것’이다. 결코 ‘그것’이 될 수 없는 유일한 ‘너’, 즉 ‘영원한 너’가 있는데, 그것을 우리는 하나님이라 부른다. 우리는 각각의 ‘너’를 통해 ‘영원한 너’를 접하게 된다. 하나님은 오로지 말을 건네 받을 수 있을 뿐이며 표현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기술할 수 없으며, 측정할 수 없고, 이용할 수 없으며, 전유(專有)할 수 없다. 따라서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수 없으며 단지 하나님을 통해 살 수 있을 뿐이다.

이처럼 부버는 관계의 개념(‘나와 너’ 및 ‘나와 그것’의 관계)으로 인간의 위치 및 본질을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기에 참다운 인간존재는 고립된 실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형성을 통해서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부버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관계를 통해 그의 실존을 형성해 나가는 창조자로 파악된다. 즉 그는 그의 철학적 인간학의 기본사상을 ‘인간실존의 기본적인 사실은 인간이 인간과 더불어 함께 있다는 것’으로 함축성 있게 표현하였다. 이처럼 그의 인간학이 ‘인간의 전체성’에 관한 탐구이기 때문에 그의 교육론의 주조음도 ‘학생의 전체성’에 관한 탐구, 즉 전인교육론이라고 볼 수 있다.


성격 교육이 최대 과제

부버와 하시디즘의 인간관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독특성, 개별성, 그리고 평등성이다.

모든 개인은 저마다 남과 다른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독특성은 개별화의 전제조건이 되기도 한다. 인간교육의 가장 중요한 과업 중의 하나는 각 개인이 지닌 독특성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동시에 인간은 누구나 독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모두 동등하다고 본다. 말하자면 빈부, 귀천, 성별 등의 차이에 전혀 관계없이 누구나 똑같이 자신의 일을 신성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시디즘에서는 인간이 세계와 하나님 간의 교량역할, 즉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한다.

인간에게 주어진 이러한 역할을 인간은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봉사를 통해 수행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봉사는 특별한 봉사가 아니라 일상생활 속에서 접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봉사를 뜻한다. 곧 일상생활의 신성화를 통해 세계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은 하나님과 공조관계에 놓여 있는 것이다. 따라서 바로 이러한 것들을 인간으로 하여금 깨우치게 하고 실현하게 하는 것이 교육의 과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시디즘의 이러한 인간관이 부버의 인간교육론의 모태가 된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부버에게 있어서 인간이란 관계를 통해 그의 실존을 형성해 나가는 창조자로 파악된다. 그러므로 부버의 교육적 중점은 자연과의 관계, 인간과의 관계, 정신적 존재와의 관계를 통해 학생들의 인격을 계발하고 실현하는 데 있다. 그에 의하면, 우리는 모든 것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따라서 교육은 어느 곳에서나 일어날 수 있다. 즉 우리가 마음의 문을 개방하기만 하면 세계가 그 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부버는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를 이상적 인간상으로 보면서 성격교육(education of character)을 가치 있는 인간교육으로 강조하였다. 따라서 교사의 최대 과제는 바로 성격교육에 있으며, 이것이 교육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란 그의 행위와 태도로 전존재를 건 반응을 하기 위해 깊은 준비성을 가지고 상황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사람이며 동시에 그의 행위와 태도의 총체성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그의 존재의 통일성을 표현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같은 사람은 격률이나 관습체계로 이해될 수 없다. 왜냐 하면 그는 전존재로 행동하는 자이며, 주어진 상황의 독특성에 조화롭게 반응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람이 우리가 바라는 인간상이다. 위대한 성격의 소유자는 틀에 박힌 반응, 즉 획일적인 반응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늘날의 획일화된 사회는 틀에 박힌 반응들이 일상적인 규칙처럼 되어 있다. 현대인들은 틀에 박힌 반응을 함으로써 두려움에서 벗어나고 인격적 책임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한다. 그런데 인격적 책임을 벗어난 삶은 무의미하다고 부버는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교육의 과업은 결국 학생들에게 인격적 책임을 일깨워 주는 일일 것이다.


‘만남’에 의한 인간성 회복

이상에서처럼 부버는 현대의 위기상황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본래적 모습을 인간과 인간 간의 참된 관계형성, 즉 ‘만남’을 통해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는 교육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은 교육작용이 점차 비인격적 관계인 ‘나-그것’의 관계로 타락하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하면서, 인간의 내재적 능력을 전체적인 입장에서 전반적이고도 조화롭게 계발시켜야 한다고 하는 ‘전인교육론’을 피력하였다.

그가 주장한 인격적 ‘만남’에 의한 인간성 회복의 문제는 사람됨의 문제이며, 이러한 사람됨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이기 때문에 현대의 비인간화된 교육마당에서 ‘만남’이 중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의 철학적 인간학이 오늘날 더욱더 우리 가슴에 깊숙이 와 닿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만큼 비인간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화 교육은 현대교육이 걸머져야 할 중대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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