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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때을 위한 안디옥예루살렘교회(The Antioch Church for Jerusalem Church)에 즈음하여
arm  2014-08-07 07: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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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디옥예루살렘교회(The Antioch Church for Jerusalem Church)에 즈음하여

(눅 21:24)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 롬11:16~25 )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은즉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에게 밞히리라(파테오 πατέω, 지배, 소유을 의미)의 예언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은 유대인의 소유에서 70년 이방인에게 밟히기 시작하여, 1967년 6월 5일 다시 유대인의 소유로 돌아왔습니다.  

예루살렘은 히브리어로 샬롬의 터전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샬롬의 터전은 바로 평강과 번영과 부의 터전인 동시에 평강과 번영과 부의 근본이란 뜻으로 이는 예슈아 마쉬아흐(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입니다(고전 3:11 참조). 또한 이는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즉 예루살렘의 소유에는  복음의 주역이란 말도 되고 또한 교회의 주도적 역활 혹은 지도하는 세력이란 믜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AD 70년과 AD 1967년을 기점으로 하여 서로 소유권자가 바뀌며 이 때 복음의 주도(핵심) 세력 역시 서로 교체가 되어지며 교회 지도자 역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교체가 되어집니다.    

그런데 이방인의 시대에 와서 교회가 이방인들로 채워지고 교회 지도자들 역시 이방인으로 대체되자 이방인 지도자들은 위에 롬11:17의 충고를 무시하고 참 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버리고 돌 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오늘날까지 이방인교회 안에 그 뿌리를 단단히 내리고 교회를 지배하여 온 전통이 되었습니다. 이른 바 헬라신학이 핵심이 된 대체신학이 바로 그것인 것입니다.    

우리 말 개혁 성경에 진액으로 언급되어진 것은 헬라원어는 피오테스(piovth" pee-ot'-ace)에서 비롯되어진 것인데, 그 뜻은 영혼을 기름지고 살찌게 하는 사상과 생각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합니다. 즉 참 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인  히브리 사상과 철학과 문화적인 바탕은 영혼을 살찌게 하고 기름지게 하며 풍성케 한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참감람나무가 아닌 다른 나무의 뿌리의 진액은 영혼을 헐벗고 굶주리고 가난하게 한다는 역설적인 뜻을 담기도 한 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이방인 교회와 지도자들은 사도와 권고와 성령의 명령을 거역하고 이렇게 영혼을 살찌게 하고 기름지게 하며 풍성케 하는 참 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대신 영혼을 헐벗고 굶주리고 메마르게 하며 가난하게 하는 이방신학인 헬라철학을 히브리철학 대신 선택하고 이를 취함으로 이 때부터 이방인 교회는 헬라철학의 지배를 받게 되었으며 이렇게 가감하여 나온 것이 바로 대체신학이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반유대주의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또한 그 때로부터 알레고리적인 성경 해석과 더불어 성경과 사도교회의 바탕이 되어 주었던 밤문화 중심에서 태양문화 중심으로 옮겨 지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로부터 태양문화 중심인 로마카톨릭이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돌감란무의 진액으로 인하여 교회는 아도나이 야훼 엘로힘(주 여호와 하나님) 혹은 아도나이 예슈아 마쉬아흐(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점점 멀리 가기 시작했으며 드디어 로마카톨릭(세상의 근본인 동시에 세상 종교와 문화 철학 및 사상의 근본은 바로 세미라미스로부터 시작한 바빌론주의에 있으며 태양문화 로마주의 역시 헬라철학과 함께 바빌론주의의 양대산맥이라고 볼 수 있음) 안에 구원의 샘 조차 마르게 하고 구원의 법칙조차 변개시켜 버린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로마카톨릭 안에 신비주의와 미신만이 판을 치게 되었으며 그렇게 로마카톨릭은 대부분의 선한 인민 대중을 속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혁자 말틴 루터조차도 이 바빌론적인 형태의 로마카톨릭에 대하여 비판과 탄식을 금한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죄를 회개하고 속함을 받기 위하여 로마에 가서 빌라도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고행(마치 불교의 고행으로 해탈한다는 주장과 다름 없이, 불교에서 자신의 학대를 통하여 죄 즉 업에 대하여 스스로 대가를 지불함으로 구원을 얻고 해탈하는 것으로 착각하듯이, 스스로 고행을 통하여 죄에서 구원얻을 수 있다는 이단적인 교리)을 통하여 얻고자 하는 것은 이단적인 교리이며 엉터리 종교적 관념이란 것을 깨닫고 이에 반발하여 즉시 로마를 떠났던 것입니다.  

자신의 죄 사함 받기 위하여, 로마에까지가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빌라도의 계단(성 계단 성당의 계단)을 무릎으로 오르내리던 루터는 합 2:4(롬 1:17)의 말씀을 깨닫고 로마에서 돌아오는 것이 계기가되어 이 때로부터 개혁의 도화선이 피어 오른 것입니다.  

거기에 개혁의 불꽃에 결정적으로 기름을 부은 것은 중세에 있어온 면죄부 판매였습니다. 즉 1476년 식스토 4세에서 비롯된 죽은 자들을 위한 면죄부 판매가 루터 당시인 레오 10세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의며 이를 위하여 당시 독일의 수도사 가운데는 천부적인 사깃꾼 기질을 갖고 있으며 거짓되고 사기적인 세치 혀를 가진  요하네스 테쩰이란 수도사가 있었는데 로마 당국은 이 자를 베드로 성당의 신축 자금의 독일 지역 담당 모집책으로 임명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때는 독일국민들이 테쩰의 감언이설과 그의 세치 혀에 놀아나고 있었던 때였던 것입니다.  

"지금 맬 수도 풀 수도 있는 권세를 받은 교회가 천국 지옥 문을 열어 놓았다. 면죄부를 사는 사람은 이 자리에서 곧 용서받을 것이요 연옥에 있는 자를 위해 이 표를 사면은 그 동전(은화)이 헌금함에 떨어지는 순간 연옥의 영이 놀라 튀어 오른다" 라고 하는 그의 궤변적(비성격) 외침은 바티칸 당국의 연옥설을 기반으로 한 것이었으며 여기에 요하네스 테쩰의 인간을 현혹케 할 만큼 현란하며 사기와 날조로 점철된 수사력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앞에 몰려들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말틴 루터는 당시 이러한 죽은 자를 이용하여 돈을 갈취하는 교황청과 테쩰의 행위에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분개하였으며 드디어 이러한 바티칸 당국의 사기적인 처사에 항거하여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의 정문에 95개의 반박문을 게시함으로 루터에 의한 개혁의 불꽃이 타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죄 사함과 구원은 종교적인 고행이나 면죄부를 교황으로부터 구매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합2:4(롬 1:17)에 의거한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 오직 은혜만으로(sola gratia), 오직 믿음만으로(sola fide)써 만이 오직 유일하다는 기치 아래 교황청에 대항하게 과감히 일어선 것입니다. 보름스 회의 교황청의 파문 등 당시 실권자들인 제후들이 처한 여러가지 정치적인 상황에 따라 찬성 혹은 반대에 부딪쳤으며 심지어 농민전쟁을 거치는 등, 그렇게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루터의 개혁은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루터의 개혁은 일단 성공적인 것이 되었고 오늘날 프로테스탄트 교회 혹은 개혁교회(개신교)의 탄생을 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루터는 개혁의 성공으로 인하여 탄생된 프로테스탄트 교회이기 때문에 루터를 향한 최고의 찬사와 칭송을 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루터에게 최고의 찬사와 칭송을 올리는데 주저함이 없었으며 그를 향한 사랑과 존경은 지금까지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프로테스탄트 교회 목사들은 자신과 부인의 생일은 잊을지언정 10월 31일 만은 잊지 않고 있으며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10월 마지막 주를 종교개혁기념 주일로 꼬박 꼬박 지키고 있습니다.

로마카톨릭과 교황청의 타락한 모습에 반기를 들고 신앙적 양심과 따라서 수도사로서 혹은 신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하여 즉 자신의 구원에 대한 신학적인 견해를 완성하기 위해 개혁을 도발하였던 루터였지만, 그러나 자신이 구원에 대하여 그렇게 고민하며 애쓰게 만들었던 원인인 로마카톨릭의 타락과 부패의 원인은 제대로 깨닫지 못하였던 것 같으며 따라서 이에 대한 청산 없이 이에 대한 문제는 숙제로 남겨 놓은 채 저 세상으로 가 버렸습니다. 루터 역시 바빌론주의와 로마주의에 대하여 인식은 하였던 모양입니다. 그가 라틴어로 Babylonish Captivity of the Church(바빌론에 사로잡힌 교회)를 저술한 것을 보면 루터도 교회 안에 존재하는 바빌론주의와 그 요소에 대한 인식이 조금은 있었던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는 성례전에 대한 언급에 그친 것이었며 그 밖에 이교적이며 바빌론적 태양문화적인 것에 대한 세밀한 부분은 보지를 못한 듯합니다. 그래서 그의 개혁의 영향을 받고 있는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 안에 로마적이며 태양문화적인 요소들이 많이 잔존하도록 한 실수는 결코 작은 것이라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괴로워했던 구원에 대한 변질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몰랐다는데 있습니다. 변질은 언제나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루터는 알지를 못했습니다.    

최초의 변질은 태초에 아담과 하와의 최초의 타락에서 보듯이, 뱀의 유혹과 하와의 어리석음에서 비롯되었으며, 하나님 말씀에 가감하고 혼합하며 섞을 때(창 3:1-5, 레 19:19, 신 4:2, 12:32)부터 변질은 시작된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였으며 주께서는 앞에 언급한 바와 같이 가감하고 섞고 혼합하여 변질 시키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고 절치부심 하신다는 사실을 몰랐으며 또한 성경에서 얼마나 많이 가감과 혼합 섞음을 통하여 오는 변질에 대하여 금하고 계시며 경계하신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데 있는 것입니다. 또한 루터는 또 하나의 바빌론주의적인 헬라철학에서 온 대체신학의 정체를 깨닫지 못한 실수가 발견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루터의 개혁은 부패와 타락의 원인이며 또한 구원의 변질의 원인은 전혀 손을 대지 못한 채 반조각의 개혁에만 그쳤으며 이는 후에 자유신학이 탄생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다고 보는 것입니다.

또한 루터는 대체신학의 정체는 물론 눅21:24을 깨닫지 못하고 때에 대한 것을 무시한 과오가 있습니다. 그는 초기에는 유대인들이 자신의 선한 처사에 감읍하여 회개하고 돌아올 줄 착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에 유대인들을 선하게 대하며 여기에 대한 글까지도 남겼으나 그러나 루터는 말년에 가까이 이르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조급함과 광기에 사로 잡혀서 해서는 안 될 짓을 했으며 씻을 수 없는 과오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대체신학에 사로잡혀 있는 이방인 교회는 이에 대하여 전혀 문제 삼지를 않았으며 그러한 결과, 루터의 이 엄청난 과오는 지금까지도 묻혀 있으며 따라서 알고 있는 사람보다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입니다.

루터는 개혁자이긴 했지만 이방인 시대에 와서 생성된 변질된 신학 형태인 대체신학에 대한 자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이 대체신학은 이방인의 때가 도래하였을 때, 이방인(교회)들은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멸시하고(롬 11:16-18)하고 돌감나무의 진액(이방첧학, 헬라철학)을 하여금 받아 왔으며,  거기에 로마시대와서는 태양문화 바빌론문화(로마주의)와 간음한 결과, 태초에 타락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어버렸듯이 생명을 잃어버렸다는데, 루터는 이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루터에 의한 개혁은 그도 언급한바가 있거니와 로마주의 혹은 바빌론주의를 교회에서 몰아내지 못하고 오로지 임시 방편으로 이루어진 개혁에 불과하며 이는 후에 더 큰 문제와 짐을 교회에 속에 안겨 준 꼴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 역시 대체신학의 올무 속에 갇혀 후에 히틀러의 아비라는 오명을 들을 수 밖에 없게 되었으며 유대인에게는 결코 씻지 못할 영원한 죄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루터의 개혁은 인문주의적인(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 바탕 속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후에 자유주의신학이 태어나는 빌미가 되었으며 진화론이 발생하도록 방치한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루터의 개혁 이후에도 로마 카톨릭의 태양문화 중심은 그대로 프로테스탄트 개혁 교회 속에 그냥 잔존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또한 개혁 교회의 전통이 되어 지금까지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루터에 의하여 개혁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태양문화의 잔재는 아직도 교회 속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의 때 이후에 생겨난 대체신학과 그 쓴 뿌리인 반유대주의 역시 여전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아니 도리어 루터로 인한 대체신학과 반유대주의는 더욱 악랄해졌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말년에 와 즉 1543년에 남긴 "유대인과 그들의 거직말에 대하여"라는 소책자는 반유대주의에 더욱 불을 지폈고 후에 셰익스피어, 바그너 등과 저 살인광의 대명사 히틀러에게까지 이어졌는데 히틀러는 바그너 음악을 광적으로 좋아하고 바그너의 추종자라는 사실은 결코 우연으로만 볼 수 없다 하겠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좋아하고 또한 오페라를 좋아합니다만 그리고 교회에 처음 나간 것도 당시 성가대에 들어가 성악을 공부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만, 처음부터 바그너의 악극은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이제와 생각해 보니 아마도 그러한 영적인 문제가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그리고 루터는 히틀러로 하여금 유대인을 위한 최종 해결책이라는 미친 생각을 갖게 했고 600만 대학살이라는 역사상 미증유의 사태를 불러오게 했으며 히틀러로 하여금 전대미문의 대 참살 혹은 살육게임 즉 홀로코스트를 연출하도록 한 동기 부여를 한 당사자라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그래서 역사는 루터를 '히틀러의 아비'라는 오명을 그에게 안겨 주고 있으며 히틀러를 비난하듯이 그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있습니다.  

루터는 자신의 글 속에서 에스더서를 아주 좋아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나오는 아각(아말렉 족속)의 후예인 하만의 유태민족 말살에 대한 것을 그대로 추종하고자 욕망을 보여 주고 있는데 이로서 하만의 유대민족 말살의 사악함이 그대로 루터에 이어졌고 이는 다시 히틀러에 이어져 세기의 비극이 연출 된 것입니다. 즉 하만과 루터와 히틀러는 반유대주의 사상의 삼위일체인 셈입니다.

지금까지 개혁교회에 차지하는 루터의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할 정도인지라 오늘의 교회는 대체신학 속에 살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며, 또한 루터의 이러한 반유대주의인 태도는 지금까지도 교회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반감을 사게 함으로써, 해서 유대인의 때가 도래한 오늘날에 있어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우리 이방인 교회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으며 유대인들에 대한 복음의 방해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루터의 불완전하고 임시 방편적인 개혁으로 인하여 오늘의 프로테스탄트 교회 또는 개혁교회 속에는 바빌론 이교사상(헬라철학과 로마주의)를 그대로 안고 있게 된 것이며 더불어 교회의 예배 의식 제도 역시 사도교회와는 다른 비성경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이는 또한 오늘날 거듭난 유태인 형제들의 모임(메시아닉 쥬 교회 또는 유대인 크리스천 교회)과 그들의 예배를 보면 얼마나 이방인 교회가 지금까지 성경속에 지시하고 계신 헤브라이즘적인 사상과 문화와 철학을 저버리고 이교적이며 태양문화적인 것에 몰두 해왔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곡식가루가 거룩하니 떡덩이도 거룩한 것이며 뿌리가 거룩하니 그 가지 역시 거룩한 법입니다. 그런데 거룩하지 않은(오염된 혹은 더러운) 곡식가루로 어찌 거룩한(정결한, 깨끗한) 떡덩이를 만들 수 있으며 그 뿌리가 거룩하지 않은데 어찌 가지가 거룩하겠으며 또한 거룩한 열매, 아름다운 열매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롬 11:18-19)?

따라서 곡식가루가 거룩하지 않고 뿌리가 거룩하지 않으니 결과는 명확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방인 시대와서 교회가 선한 열매 대신 악한 열매를 얼마나 많이 맺었으며 살인와 폭력 및 피 흘림 또한 얼마나 많았습니까?

또한 오늘의 자유주의 신학은 또 무엇이며 사신신학과 진화론은 또한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는 곡식가루가 거룩하지 못한 것으로 떡덩이를 만들려다 보니 그렇게 되었으며 뿌리가 거룩하지 못하니 가지가 거룩하지 못하고 또한 그 열매 역시 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맺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사신신학과 진화론은 그 것이 세상에 나온 이후 하나님을 대적하고 복음의 원수로서 절대적이었습니다.

진화론이야말로 바로 인본주의의 상징인 동시에 표본이며 헬라철학의 진수이라는 것을 아신다면 얼마나 헬라철학이 교회에 악 영향을 끼쳤는지를 아실 것입니다.

진화론이야말로 우리 주, 아도나이 야훼 엘로힘 또는 아도나이 예슈아 마쉬아흐의 원수요 대적인 사단이 개발해 낸 최고의 도구로서,  진화론이 생긴 이래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그 독아에 살아져 갔으며 특히 과거 복음의 찬란한 꽃을 피웠던 영국 청교도의 고장이며 저 유명한 매튜 헨리 죤 번연, 그리고 복음의 맹장으로서 사도바울 이래 가장 탁월했던 죠지 윗필드, 챨스 스펄젼이 다져 놓은 영국을 초토화 시키고 복음을 황페케 했으며 지금은 무신론의 소굴이 되거나 모슬렘의 독아 앞에 죽어가는지 알 것입니다.

진화론이 발표된 이래 모든 교육은 진화론에 맞춰지고 진화론를 바탕을 깔리지 않은 학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되었으며 따라서 이 순간에도 학교에서는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진화론에 세뇌되어져 그 영혼이 죽어가고 있는지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사단의 진화론을 통한 목표는 단 하나, 독일철학 및 사신신학과 같이 모든 인류로부터 창조주요 대주재이신 아도나이 야훼 엘로힘을 빼앗는 것이요 창조주께서 창조하신 피조세계를 자신의 손아귀에 넣고 복음을 무력화 시키고 훼방하며 지구상에서 그리스도의 교회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는 것입니다. 바로 교육을 통해서 말입니다. 현재 학문 위에 군림하는 것은 진화론이며 진화론은 모든 학문과 철학의 근본이며 왕입니다. 그리고 이 진화론은 고전 헬라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대체신학을 낳은 바로 그 헬라철학의 형제요 자매란 것입니다.

어쨌든, 이러한 교회의 변질된 행위는 AD. 70년 이후 사도들을 중심으로 하는 유태인 지도자들이 사라져가면서 유대인으로 헬라철학자로서 플라톤주의자인 필론과 그 후 100년경 이방인 헬라철학자 유스티누스에 의하여 헬라철학이 교회에 본격적으로 유입됨으로서, 그리고 AD 135년 경, 유대 2차 반란(바르코크흐바의 반란) 이후 본격화 되었는데, 이방인교회에 의하여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성경의 바탕이었던 헤브라이즘적인 사상과 철학과 문화)은 이방인 철학 혹은 이교철학(헬라철학인 플라톤주의 등)으로 바뀌게 되면서, 역시 헬라철학자로서 후에 교부가 된 알렉산더 클레멘트가 말하고 있듯이, 이방인교회는 헬라철학에 의하여 이끌림 받게 되었으며 이 때로부터 본격적인 돌감람나무 시대로 접어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AD. 70년 복음의 상징이며 핵심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군에 의하여 회복 또는 탈환이 되고 그 때로부터 유대인의 때가 도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유대인들이 정말 거짓말 같이 하나 둘 예슈아 마쉬아흐 품에 안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과 우리 주님이신 아도나이 예슈아 마쉬아흐의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으며 또한 정확하고 무오하기에 역사 속에 우리는 유대인들의 구원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헤브라이즘 사상 속에 예슈아를 받아들이고 있으며 과거 알파였던 유대인들은 오메가의 교회를 형성해 가기 위해 우리 교회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마지막 마무리와 완성 그리고 새 한 사람의 형태를 완성키 위해 그리고 성전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 점차적으로 교회를 채워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엡 2:11-22). 이제 유대인들이 교회에 들어와 완전히 구원의 수자가 채워지면 그 때는 부활이 있게 될 것이며 또한 나팔소리와 함께 주께서 강림하실 것입니다(살전 4:16-17, 롬 11:15 참조)

따라서 이제 이방인의 때에서 유대인의 때에 이른 지금 우리 이방인교회는 유대인의 구원에 힘써야 하며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방인 시대 이후 돌감람나무에 뿌리를 두고 지금까지도 그 뿌리의 진액을 취해온 우리 이방인 교회는 사도교회의 전통을 다시 찾아야 가야 하며 참 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다시 취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바로 우리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길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 주님은 만왕의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유대인들을 위해 유대인들의 왕으로서 혹은 유대인들의 메시야로서, 다른 어느 곳이 아닌 바로 유대 땅 감람산 즉 승천하신,  바로 그 곳에 강림하실 것입니다(슥 14:4-11 행1:11-12 참조).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예슈아는 우리 유대인이 아니다. 그는 이방인에 불과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유대인 예슈아다. 우리에게 유대인 예슈아를 데리고 와라 하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저들이 예슈아을 저들의 마쉬아흐로 저들의 구주로 저들의 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중동 땅, 그리고 유대 땅 베들레험에서 태어나신 예슈아가 아니라 대적들이 말하고 또한 조롱하듯이, 흰 피부 노란머리에 파란 눈의 아도니스(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미소년이며, 바빌론의 여왕 세미라미스<하늘 황후, 렘 7:18, 로마카톨릭에서 숭배하는 마리아>의 아들 다무즈<겔 8:14>의 다른 이칭)를 예슈아로 신앙하고 섬겨왔습니다(영지주의자가 쓴 "예수는 신화다" 참조).  중세로부터 지금까지 예슈아의 초상화라는 것을 한 번 보십시요. 모두가 흰 피부 노란 머리에 파란 눈을 가진 이상한 예슈아를 그려놓고 있지 않나? 그래서 그리스도의 원수들로 하여금 예슈아 마쉬아흐 즉 우리의 주님은 신화적인 존재로 조롱받도록하였으며 그 원흉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주님은 분명 흰 피부에 노란 머리의 에슈아, 파란 눈의 예슈아가 아닙니다. 검은 피부 머리에 검은 눈을 가진 예슈아가 우리가 찾아야 할 대상이며 진짜 예슈아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의 주님은 이빙인 특히 헬라의 옷을 입은 예슈아였으며 그 예슈아(흰 피부 노란머리에 파란 눈의 예슈아)를 등에 없고 이방교회는 예슈아의 동족인 유대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는데 앞장 서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들의 요구에 응할 때가 되었습니다. 흰 피부 노란머리에 파란 눈의 에슈아,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의 옷을 입은 예슈아가 아니라 유대인의 옷을 입은 예슈아를 우리가 찾아야 할 때이며 또한 저들에게도 찾아 줄 때이며 또한 저들 앞에 모시고 갈 때인 것입니다.  

성경도 분명 히브리의 터전과 바탕 속에, 사상과 문화와 철학 속에, 히브리인 또는 히브리인의 직제자에 의하여 쓰여졌기 때문에 히브리 옷을 입고 계십니다. 또한 예슈아 역시 성령으로 잉태하시고 히브리 인인 미리암<마리아>의 태를 빌려 오셨기 때문에, 히브리인이 분명하시며 따라서 히브리 옷을 입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복음도 히브리 옷을 입으신 예슈아 속에서 보다 잘 나타나게 되었으며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 역시 히브리 옷을 입을 때 보다 성경적이 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쪽으로 가까이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이방인들도 참 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취해야 함은 물론 사도 바울의 권고를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이방인으로서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가 유대인처럼 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유대인을 위한 이방인교회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는 이 일을 한국교회에 맡겨주셨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주님의 뜻에 부응하여 유대인권 복음화 운동 및 유대인사랑운동과 복음화운동을 위한 이방인 교회(The Antioch Church for Jerusalem Church, 헤브라이즘적인 교회 모습을 담고, 유태인권 복음화운동을 통한 유태인 복음화운동 위한 교회)가 우리 한국교회 안에서 출발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이에 부족한 사람의 가정으로부터 그 시작을 알리면서 안디옥예루살렘 교회의 출항을 상천하지에 거룩하심과 영화로우심이 오직 유일하신 우리들의 주, 아도나이 예슈아 마쉬아흐(주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한국교회에 선포하면서 한국교회의 동참을 촉구하고자 합니다.  

안디옥 예루살렘 교회의 목표는 유대인의 때 카페에서 정한 5개 목표와 동일합니다.

一. 창조신앙 재건 운동
一. 주님의 명예회복운동
一. 복음운동 & 중생 및 회개운동
一. 한국교회 유대인사랑운동
一. 사도교회 회귀운동 & 요쉬야후 운동

이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깨달으신 분, 안디옥예루살렘교회의 취지에 부응하고 뜻을 함께 하시고자 하는 분을 모시고자 하며 또한 이에 대한 기도를 부탁드리는 바입니다.



상천하지에 가장 어리고 부족한, 아도나이 예슈아 마쉬아흐의 종,
에피스코포스, 요하난 사울 벤요쉬야후(강요한)  드림

[출처] 유대인의 때을 위한 안디옥예루살렘교회(The Antioch Church for Jerusalem Church)에 즈음하여 (Adam-Kadmon) |작성자 요쉬야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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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9 <문자>  위기의 카운트다운--John Hagee    2389
278 <문자>  윌리암 브랜햄과 치유의 소리(William Branham and The Voice of Healing Revival)    3284
277 <문자>  유골분이 보석처럼 영롱한 사리로 변한다.    1279
<문자>  유대인의 때을 위한 안디옥예루살렘교회(The Antioch Church for Jerusalem Church)에 즈음하여    2076
275 <문자>  유대인의 왕이시요 만왕의 왕이신 메시아 예슈아의 이름으로 내가 선포하노라!    1605
274 <문자>  유월절(The Feast of the Lord)    2505
273 <문자>  유월절의 영적 의미    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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